조선의 대간(臺諫)이 21세기 여당의 '김승원 청문회'를 본다면 [김세희의 역사ON]

과거는 현재를 관통합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수천·수백 년 전 벌어진 사건과 문제는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됩니다. 특히 사회·정치·경제 분야에서 빚어지는 고질적 병폐는 시대를 달리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세희의 역사ON’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 등 사료에 기록된 사건·인물·제도를 오늘의 현안과 연결해 살펴보고 논평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성찰의 거울로 삼아 오늘의 현실을 이해할 단서를 찾겠습니다.

 

조선 시대 임금이 관리를 임명할 때 대간(사헌부·사간원)의 동의를 거치는 제도가 있었다. 바로 서경(署經)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인사검증제도다. 당시 대간은 임명 당사자의 문벌과 품행, 경력을 철저히 분석한 뒤 국왕의 임명장(고신)에 서명할지 여부를 판단했다.  

 

검증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본인의 사소한 행적부터 친가·외가, 심지어 고조부모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샅샅이 살폈다. 기간만 최대 50일이 주어졌다. 군주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매우 껄끄러운 제도였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가족 관련 질의에 답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시스

성군으로 칭송받은 세종도 서경의 벽에 번번이 부딪혔다. 1420년 세종은 이발이라는 인물을 대사헌에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사간원이 막아섰다. 3년 전 중국 사신으로 갔을 때 사사로이 특산물을 밀매해 외교적 망신을 산 전력 때문이었다. 세종은 계속 임명을 고집했지만, 사헌부 관리들은 “하교를 받들지 못하겠다”며 출근을 거부했다. 결국 세종은 자신의 뜻을 꺾었다. 

 

6년 뒤 세종은 이발을 슬그머니 병조판서로 앉히려 했다. 이번에도 사간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헌납 정갑손은 “병조는 인사권과 군사 기밀을 맡는데 이발처럼 행실이 바르지 않은 사람은 하루라도 그 자리에 있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세종도 “다시는 말하지 말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정갑손은 “소신이 간관으로 있지 않으면 그만이나 간관인 이상 어찌 잠자코 있겠는가”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발은 그해 세상을 떠났다.  

 

수백 년이 흐른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더불어민주당은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열고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으로 채택해 청와대로 송부했다. 맹탕으로 끝난 청문회 이후 이틀 만이다. 제약사 제넨셀의 코로나 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 가족이 근무하는 발달장애인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특혜 의혹 등 어느 것 하나 말끔히 해명된 것이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러 의혹이 청문회에서 해소됐다고 판단하고 ‘김승원 지키기’에 혈안이다. 합리적 의혹 제기마저 정치 공세로 깎아내리고 있다. 임금의 불호령 앞에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부적격 인사를 걸러낸 조선의 대간들과는 판이하다. 오히려 스스로 청와대 거수기를 자처하며 현대판 대간의 역할을 내팽개치고 있다. 전근대 시대 신하보다 못한 퇴행적 정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후보자의 임명반대는 52.1%로 찬성(25.1%)의 배가 넘는다. 이것이 민심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 후보자의 임명 여부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국민 눈높이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말한 대로 ‘국민 눈높이’에서 민심을 고려해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의혹투성이 후보자를 국무위원에 앉혀 민심을 거스른다면, 그 거대한 후폭풍은 오롯이 이 대통령에 향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