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형성·발전해 온 종교의 고유한 사상과 가치를 민족과 교단의 경계를 넘어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평화의 가치로 확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학술대회가 마련됐다.
한국평화종교학회(회장 주우철)는 18일 오후 충남 아산시 선문대학교 본관 606호에서 ‘K-종교와 평화문화’를 주제로 ‘2026 한국평화종교학회 추계학술대회’를 가졌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한국에서 형성·발전해 온 종교사상 속 평화의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세계적 평화문화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특히 발표자들은 ‘K-종교’를 단순히 한국 종교의 해외 진출이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 머물지 않았다. 한국 종교의 특수한 역사와 사상이 세계인의 삶과 만나 어떻게 보편적인 평화의 언어로 번역되고 실천될 수 있는지가 주요 화두로 제시됐다.
류성민 한신대 교수는 ‘종교와 평화, 그리고 K종교의 시대정신-근대 한국 자생 종교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류 교수는 한류가 대중문화를 넘어 의식주 등 문화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최근에는 ‘K-종교’와 ‘K-종교학’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며 한국 종교가 세계에 제시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짚었다.
류 교수는 오늘날 K-종교가 주목해야 할 시대적 가치로 ‘평화’를 제시했다. 그는 “오늘의 시대정신은 평화의 추구이고, 평화를 추구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 토대는 차별을 억제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차별이 존재하는 한 평화는 구호에 그칠 뿐이고, 차별을 없애지 못하면 결코 ‘K’를 운운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근희 서울대 교수는 ‘다산의 평(平)·중화(中和) 해석과 원불교 평화 개념 비교 고찰-한국 종교의 평화문화적 함의’를 발표했다. 김 교수는 다산 정약용의 사상과 원불교의 평화관을 비교하며 한국 종교사상에서 평화가 개인의 내적 평정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실천으로 확대되는 특징을 살폈다.
김 교수는 “정약용의 평화 개념과 원불교의 평화관은 각기 다른 시대적 위기와 상이한 내부 논리에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내적 평정에 한계짓지 않고 물질적·사회적 조건의 정비를 동반한 사회적 구현으로 밀고 나갔다는 점에서 공통된 지향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다산과 원불교의 사상을 통해 한국 종교가 평화를 관념이나 제도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마음의 변화와 현실의 물질적·사회적 조건을 아우르는 통합적 실천으로 다뤄왔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전통은 국가 간 분쟁에서 공동체의 갈등, 개인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평화 구축에도 유효한 사유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수현 경희대 교수는 ‘K-종교의 평화문화: 대순진리회 해원상생 이념의 가치와 역할’을 통해 한국 신종교의 평화사상이 세계와 만날 가능성을 살폈다.
이 교수는 “대순진리회의 해원상생은 과거의 원한을 해소하고 새로운 갈등을 예방하며 호혜적 연대를 구축하는 적극적 평화 윤리로서 작동한다”고 밝혔다. 해원상생을 개인의 수양이나 교단 내부의 교리에 국한하지 않고 갈등을 풀고 새로운 갈등을 예방하며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현대적 평화윤리로 해석한 것이다.
특히 세계상생포럼과 ‘상생 Stay’, 대순진리회의 국내외 구호·봉사단체인 DIVA 활동 등의 사례를 통해 해원상생이라는 종교적 언어가 ‘담론화-체험화-실천화’의 과정을 거쳐 보편적인 공적 언어로 확장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종교적 가치가 교세 확장을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다른 문화권과의 공존과 연대를 만들어내는 공공적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연희 선문대 교수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한민족선민론의 보편주의적 확장 가능성-종교와 평화문화의 관점에서’를 발표했다. 안 교수는 종교의 선민사상이 지닌 특권과 책임이라는 양면성을 살피면서 가정연합의 한민족선민론이 세계적 평화사상으로 확장되기 위한 조건을 분석했다.
안 교수는 선민사상의 핵심적인 문제는 민족적 특수성이 타자에 대한 우월성과 배제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책임과 봉사라는 보편적 소명으로 전환되는가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정연합의 한민족선민론은 민족에서 출발하지만 민족으로 끝나지 않으려는 선민론”이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족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핵심적인 신학적·종교문화적 과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이를 위해 선민을 우월한 지위가 아닌 ‘타자를 위한 책임’으로 이해하는 ‘책임적 선민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한국의 역사와 종교문화에서 출발한 가치라 하더라도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참여하고 재해석할 수 있어야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K-컬처가 한국적 특수성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세계인의 참여와 재해석을 통해 세계문화로 발전한 과정에서도 그 가능성을 찾았다.
이날 발표들은 서로 다른 종교와 사상을 다뤘지만 하나의 공통된 질문으로 모아졌다. 한국 종교가 세계로 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이다. 한국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나 해외 신자가 늘어나는 것만으로 K-종교의 세계화를 설명하기보다, 한국 종교가 축적해 온 고유한 사상과 경험을 세계인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가치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과 원불교에서 발견되는 마음과 현실을 아우르는 평화, 대순진리회의 해원상생, 가정연합의 책임적 선민론에 대한 논의는 출발점은 달랐지만 결국 갈등과 차별을 넘어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평화문화라는 지점에서 만났다. K-종교의 세계화는 한국 종교를 일방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고유한 가치를 인류가 공유할 수 있는 ‘평화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있다는 것이 이날 학술대회를 관통한 문제의식이었다.
이어 허석 원광대 교수, 주소연 대진대 교수, 위인규 선학UP대학원 교수가 토론에 나섰다. 김민지 선학평화연구원장이 좌장을 맡은 종합토론에서는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K-종교와 평화문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