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은닉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이 노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 자택과 아들 노재헌 주중대사가 이사장을 지낸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30년 넘게 논란이 됐던 ‘안방 비자금’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지난 8월 서울 연희동 김 여사 자택을 비롯해 동아시아문화센터와 노태우센터, 과거 차명계좌 제공 의혹을 받는 전직 비서관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뒤 관련 자료 분석을 마치고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출석 일정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자금 의혹은 지난 2024년 노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의 액수가 적힌 ‘김옥숙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5·18 기념재단 등이 김 여사와 노 대사, 노 관장 등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이 지난 8월 김 여사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본격적인 강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은 지난 1995년 검찰 수사로 시작돼 1997년 대법원의 추징금 2628억원 확정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장기간 미납됐던 추징금은 2013년 최종 완납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정치권 안팎에서는 검찰이 확인한 비자금 외에 김 여사와 친인척이 별도로 관리한 자금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른바 ‘안방 비자금’이다.
1995년 10월 민주당 비자금 진상조사위원장이던 강창성 의원은 “김옥숙 여사 친인척이 관리하고 있는 것은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며 김 여사 주변의 자금까지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김 여사가 재계 총수 부인이나 여성 기업인 등을 자주 만났다는 증언과 함께 자금이 부동산이나 무기명 채권, 해외계좌 등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 같은 의혹은 김 여사 명의의 뭉칫돈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2005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김 여사 명의의 시중은행 계좌 두 곳에서 총 11억9900만원을 발견했다. 2002년과 2004년 현금으로 입금된 뒤 별다른 거래 없이 보관돼 있던 돈이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가족들이 모은 돈을 김 여사 명의로 맡긴 것”이라고 소명하면서 미납 추징금을 갚는 데 사용했다.
그 뒤로도 김 여사와 연관된 ‘수상한 돈 흐름’이 적발됐다. 2007년 국세청 조사 과정에서 김 여사가 2000~2001년 타인 명의로 농협중앙회 보험상품에 210억원을 납입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202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김 여사는 해당 자금의 출처에 대해 기업들이 보관하다 넘겨준 자금 122억원, 보좌진과 친인척 명의 자금 43억원, 본인 계좌 자금 33억원, 현금 11억원 등을 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에는 김 여사의 장외주식 거래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이 특히 주목하는 사안은 김 여사가 2016년부터 수년에 걸쳐 아들 노 대사가 이사장인동아시아문화센터와 노태우센터 등에 거액을 출연한 경위다. 5·18 기념재단이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에 따르면 김 여사는 2016~2021년 동아시아문화센터에 총 147억원을, 2022년 노태우센터에 5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념재단측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 비자금을 1266억원대로 추정하며 “자금 흐름을 역추적하면 범죄 행위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 결과 김 여사가 동아시아문화센터 등에 기부한 거액의 돈이 과거 노 전 대통령 비자금과 별개의 은닉 재산인 지, 그동안 드러났던 210억원 차명 보험을 비롯해 김 여사가 관리해온 별도의 비자금이 있었는지 등 해묵은 의문이 풀릴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