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 돈맥경화 풀어라…유통 빅3, 협력사 대금 앞당겨 푼다

추석을 앞두고 유통 대기업들이 중소 협력사들의 돈맥경화 풀기에 나섰다. 명절 직전에는 직원 임금과 상여금, 원자재·부자재 대금, 생산 물량 확대에 따른 운영비까지 한꺼번에 몰린다.

 

현대백화점그룹 제공

현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 협력사 입장에서는 대기업에서 받을 납품대금이 며칠만 빨라져도 단기 자금 운용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신세계와 롯데에 이어 현대백화점그룹까지 결제대금을 앞당겨 지급하면서 유통업계의 추석 상생 지원이 본격화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룹 계열사와 거래하는 중소 협력사 1만여곳에 결제대금 2738억원을 당초 지급일보다 최대 9일 앞당겨 추석 연휴 전인 오는 21일 지급한다.

 

대상은 현대백화점과 거래하는 약 3000곳을 비롯해 현대지에프홀딩스·현대홈쇼핑·현대그린푸드·현대리바트·한섬·현대에버다임·대원강업·현대바이오랜드·현대퓨처넷·현대면세점·현대L&C·지누스·현대드림투어·현대이지웰 등 15개 계열사 협력사다. 지난해 추석 약 9000곳보다 지원 대상이 1000곳가량 늘었다.

 

현대백화점은 명절 때만 돈을 푸는 데 그치지 않고 평소에도 협력사 자금 지원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동반성장기금과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동반성장펀드, 납품대금 지급기일 단축 등이 대표적이다.

 

판로 지원도 병행한다.

 

현대홈쇼핑이 운영하는 뷰티 편집숍 코아시스가 대표 사례다. 코아시스는 중소 뷰티 브랜드를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시키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해외 진출까지 연결하고 있다.

 

지난 7월 베트남 하노이 한류박람회에는 코아시스 입점 브랜드 15개사가 참가해 794만달러, 약 122억원 규모의 수출 상담 실적을 냈다. 현대홈쇼핑은 참가 비용과 전용 부스, 현지 시장조사 등을 지원했다. 2017년 이후 현재까지 7개국에서 144개 협력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했고 누적 수출 상담액은 993억원에 이른다.

 

국내 판로도 넓히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달 제주 우도에서 코아시스 팝업스토어를 열고 중소 뷰티 브랜드 22개사의 상품 45종을 선보였다. 마마슈 선인장 선스틱, 쟈스더마 PDRN 앰플 등이 실제 매대에 올랐다.

 

롯데도 1만2000여개 파트너사에 납품대금 9495억원을 조기 지급한다.

 

롯데백화점·롯데건설·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홈쇼핑 등 27개 계열사가 참여하며 당초 지급일보다 평균 8일 앞당겨 추석 연휴 전에 대금을 지급한다. 롯데는 2013년부터 매년 1만곳이 넘는 파트너사를 대상으로 명절 전 납품대금을 먼저 지급해왔다.

 

자금 지원 규모도 크다. 약 1조원 규모의 동반성장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전 그룹사에 상생결제시스템을 도입해 거래대금을 현금성으로 지급하고 있다.

 

롯데의 상생 전략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해외 판로 지원이다.

 

2016년 시작한 롯데-대한민국 브랜드 엑스포는 지난 5월까지 모두 22차례 열렸다. 약 1600개 중소기업이 참가했고 누적 상담 실적은 약 12억달러, 우리 돈 약 1조7000억원 규모다.

 

올해 5월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행사를 열었다. 국내 뷰티·식품·패션·라이프스타일 중소기업 50곳이 참가해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 유럽 바이어들과 522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수출 상담액만 3356만달러에 달했다.

 

참가 기업 가운데 화장품 브랜드 세인트프랑을 운영하는 스킨앤플러스도 이름을 올렸다. 중소 브랜드가 국내 홈쇼핑 판매에 머무르지 않고 롯데 유통망을 통해 유럽 바이어와 직접 만나는 구조다.

 

신세계그룹도 추석을 앞두고 이마트·신세계백화점·SSG닷컴 등 3개사가 납품대금을 최대 12일 앞당겨 지급한다.

 

3개사가 추석을 앞두고 집행하는 전체 납품대금은 조기 지급분과 기존 거래조건에 따른 정기 지급분을 합쳐 1조9500억원 규모다. 단순히 1조9500억원 전액을 조기 지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협력회사 ESG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올해 지원 대상을 기존 10개사에서 20개사로 두 배 늘려 교육과 현장 컨설팅, 평가, 인증을 지원한다.

 

지원이 실제 매출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광주·전남 지역 F&B 브랜드 바리에는 지난해 신세계백화점의 ESG 지원사업에 참여한 뒤 ESG 경영 진단 지표가 2배 이상 개선됐다. 이후 신세계의 마케팅 지원을 받아 지역 인플루언서 협업과 SNS 홍보를 진행했고, 두 달 만에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약 27% 늘었다. 올해는 다르다 김밥, 그린웨이브, 예스디자인 등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해외 판로도 넓히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4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신세계 하이퍼그라운드 쇼케이스를 열고 쿤달·배쓰프로젝트·화이트타월·아이레시피·네시픽·졸리 아우어·누그레이·베리즈 등 K뷰티 브랜드 8곳을 현지에 소개했다. W컨셉을 통해서는 프론트로우·보테로·토니웩·룩캐스트·르하스·틸아이다이 등 패션 브랜드 6곳도 함께 선보였다.

 

신세계 하이퍼그라운드를 거쳐 해외 시장을 경험한 국내 브랜드는 최근 3년간 168개에 달한다.

 

유통 대기업들이 명절마다 납품대금을 앞당기는 이유는 중소기업의 자금 구조와 맞닿아 있다.

 

추석을 앞두면 임금과 상여금 지급뿐 아니라 원재료 결제와 생산 확대에 필요한 운영비까지 단기간에 몰린다. 현금이 충분하지 않은 업체는 일시적으로 대출이나 신용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제일을 일주일 안팎 앞당기면 협력사는 별도의 금융비용 없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명절 직전 대기업의 조기 지급이 단순한 지급일 조정 이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지원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명절을 앞두고 납품대금을 먼저 지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무이자 대출과 동반성장펀드, ESG 컨설팅, 국내외 판로 개척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현대는 코아시스를 통해 중소 뷰티 브랜드를 해외 박람회로 연결하고 있고, 롯데는 브랜드 엑스포를 유럽까지 확장했다. 신세계도 바리에처럼 실제 매출 증가로 이어진 협력사 사례를 만들고 있다.

 

명절 때 한 번 돈을 먼저 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협력사의 자금 흐름과 판로를 함께 관리하는 방향으로 유통업계의 상생 방식도 바뀌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