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6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전이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지난해 대한체육회 투표에서 서울을 제치고 국내 최종 후보지로 선정된 전북이 최근 서울시에 공동 개최를 제안하면서다. 전북도는 “단독 개최 포기가 아닌 유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서울에 손을 내민 사실 자체가 기존 ‘전주 중심 단독 개최’ 구상에 현실적인 부담이 커졌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 계획 심의를 보류하면서 국내 후보지 선정 절차 자체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단독에서 서울과 공동 개최로…전북 ‘플랜B’
20일 문체부에 따르면 전북의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 계획에 대해 최근 국제심사위원회를 열었으나, 심의를 보류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전북이 공동 개최 방안을 고려한다는 의사를 내비쳐 개최 계획서 심의를 보류했다”고 밝혔다. 전북도는 단독 개최에 필요한 서울시 시설 사용 협약을 지난 11일 서울시의회 의결로 마무리하고 관련 자료를 문체부에 제출했다.
전북도의 방향 전환은 이달 초 이원택 전북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만남을 계기로, 외부로 드러났다. 전북도는 서울시에 2036 하계올림픽 공동 개최를 제안했고, 서울시는 개·폐회식 등 주요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이 서울과의 공동 개최를 검토하는 배경에는 개최 여건이 있다. 전북의 기존 계획은 경기장 신축을 최소화하고 기존 시설과 임시 시설 등을 활용해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체부 점검 과정에서 경기장뿐 아니라 숙박시설과 미디어촌 등 기반 시설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최근 공개된 자료를 둘러싸고는 국내 후보지 선정 당시와 현재 개최 계획 사이의 차이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후보지 선정 이후 경기장이 37개에서 51개로 늘었는데도 총사업비가 당초 9조1781억원에서 약 7조원 수준으로 줄었다”며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기준과 실제 비용 충족 여부를 문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전북도는 서울시에 2036 하계올림픽 공동 개최를 제안했고, 서울시는 개·폐회식 등 주요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도는 현재 서울시의 요구 조건을 놓고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전북도는 이런 상황을 ‘단독 개최 포기’로 규정하는 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종필 전북도 2036하계올림픽유치단장은 기자 간담회를 열고 “문체부 국제심사위의 심의 보류는 전북도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서울과의 공동 개최 논의가 한국의 유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서울과의 협의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이미 준비한 단독 개최안으로 문체부 심의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전북도는 서울시 시설 사용과 관련한 협약도 이미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 러브콜’은 갑작스러운 선택이었나
전북과 서울의 관계가 최근 들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전북도는 서울시와 올림픽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해 왔다. 전북도는 지난해 3월 서울시와 면담을 갖고 서울의 1988년 올림픽 개최 경험과 2032년 유치 추진 과정에서 축적한 실무 경험을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서울시는 경기장 시설 사용 등을 비롯해 전북이 요청하는 사항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후 전북은 서울을 국내 후보지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대이자, 동시에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협력이 필요한 도시라는 이중적인 위치에 놓였다.
지난해 2월 대한체육회 대의원총회에서 전북은 61표 가운데 49표를 얻어 11표를 얻은 서울을 제치고 2036 하계올림픽 국내 후보 도시로 선정됐다. 이후 전북은 단독 개최를 전제로 정부 심사와 IOC 대응을 준비해 왔다.
전북도는 지난해부터 기본 계획과 IOC 대응 용역을 진행하며 경기장·선수촌 배치와 개최 계획을 구체화했고, 올해 7월에는 IOC가 바꾼 개최지 선정 체계에 맞춰 국제 스포츠 전문가들과 전략을 재점검했다. 당시 전북도는 IOC가 제시한 협력·파트너십, 투명성, 유연성, 유산·연속성 등을 중심으로 전략대화 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 만큼 이번 서울 공동 개최 제안은 유치 전략의 단순한 보완인지, 단독 개최 구상의 사실상 수정인지가 향후 논란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윤준병 의원 SNS 공개로 다시 불붙은 ‘내부 공방’
이 과정에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관계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갑자기 공개한 것도 논란을 키운 대목이다. 윤 의원은 해당 내용이 차관의 사견이라는 점을 전제로 ‘전북의 기존 2036 하계올림픽 유치 계획이 IOC 본선 경쟁력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취지의 평가와 서울시 시설 사용 및 비용 분담 문제 등을 공개했다.
이를 두고 전북도와 올림픽유치단 내부에서는 이미 정부와 조율하며 풀어가던 사안이 외부로 공개되면서 유치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같은 갈등은 지난해에도 한 차례 불거진 바 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체부 보고를 근거로 전주 올림픽 유치 계획이 IOC 개최지 요건과 기획재정부 승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전북도는 IOC와 협의하며 계획을 조정하는 과정이라며 반박했고, 당시 김관영 전 지사는 윤 의원의 공개 발언이 IOC와의 신뢰 관계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한층 복잡해졌다. 전북이 실제로 서울시와 공동 개최 협상에 들어간 사실과 문체부 심의 보류가 동시에 확인되면서, 과거 정치권에서 제기했던 ‘단독 개최 현실성’ 논란이 현재 유치 절차의 핵심 쟁점으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시민사회 “다시 검증해야”…전북도는 “전략적 선택”
지역 시민사회에서는 공동 개최 논의를 계기로 올림픽 유치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체제전환전북네트워크는 “현실성이 부족한 국제행사에 막대한 행정력과 재정이 투입될 수 있다”며 유치 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환경·재정 등 장기적인 사회적 비용까지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전북도당도 “전북이 그동안 기존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는 저비용·지속 가능 올림픽을 내세워왔지만 이제 핵심 기반 시설 부족을 이유로 서울과 공동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며 “유치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북도는 공동 개최를 ‘후퇴’가 아니라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설명한다. 전북에 부족한 시설과 숙박·수송 기반을 서울의 기존 인프라와 결합하면 IOC의 전략대화 단계에서 한국의 유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결국 변수는 ‘서울’…그리고 ‘문체부 심의’
앞으로 가장 큰 변수는 서울시와의 협상이다. 서울시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고 전북도가 이를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지가 관건이다. 특히 개·폐회식 장소, 경기 종목과 개최지 배분, 대회 명칭, 비용 분담 등 핵심 사안을 놓고 접점을 찾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문체부 심의 보류도 단순한 행정 절차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개최 계획이 큰 틀에서 바뀔 경우 원칙적으로 대한체육회 공모 과정부터 다시 거쳐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현재 전북도는 “심의 보류가 공동 개최 가능성을 검토하기 위한 자체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향후 절차가 실제로 어디까지 되돌아갈지는 서울시와의 협의와 정부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IOC는 2036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전북도 역시 올해 7월 국제 스포츠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어 전략대화 단계 진입을 위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전북의 선택지는 현재 두 갈래로 압축된다. 서울과의 공동 개최 협상을 성사시켜 기존 계획의 약점을 보완하거나, 협상이 여의치 않을 경우 기존 단독 개최안을 다시 정부 심사대에 올리는 방식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전주 올림픽 단독 개최가 물 건너갔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서울 공동 개최 카드가 등장하고 문체부 심의가 보류됐다는 사실은 전북이 애초 제시했던 단독 개최 구상이 경기장·숙박·수송·재원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결국 전북이 국내 후보지 선정 당시 확보했던 명분을 유지하면서도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개최안을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내느냐가 남은 핵심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