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유명한 유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살아있는 유물들의 향연’이 열려 화제가 됐다.
참가자들은 유물의 외형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해석과 퍼포먼스를 더해 무대를 꾸몄다.
특히 주말을 맞아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까지 몰리면서 이날 약 3000명이 유물과 함께하는 축제를 즐겨 눈길을 끌었다.
◆ ‘내가 좋아하는 유물을 이렇게’…275팀, 개성 넘치는 분장 선봬
‘국중박 분장놀이’는 2024년 열린 ‘국중박이 살아있다’ 행사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시작됐다. 올해는 전국 단위 행사로 규모를 확대했으며 총 275팀, 643명이 참가해 지역별 본선을 거쳤다.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결선에는 최종 25팀이 무대에 올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른바 ‘최애’ 유물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같은 유물을 선택한 참가자라도 표현 방식과 그 안에 담은 메시지는 서로 달랐다. ‘숨 고르는 거북이’ 팀과 ‘엉금(金)엉금’ 팀은 조선 단종과 정순왕후가 복위될 당시 시호를 새긴 어보를 각각 분장 소재로 삼아 유물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표현했다.
국보 반가사유상을 선택한 참가자들도 눈길을 끌었다. 웹툰 작가 닥터베르(본명 이대양)는 반가사유상의 깊은 사색과 은은한 미소를 표현하면서 직접 발을 움직이는 ‘셀프 회전’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코스프레 분야에서 활동하는 ‘캡스파’(본명 박도현)는 세련된 포즈와 움직임으로 반가사유상의 특징을 재현했다.
농구 선수 출신 패션모델 이혜정은 돌을 갈아 만든 칼인 간돌검(磨製石劍·마제석검)으로 분장해 독특한 워킹을 선보였다. 그는 평소의 당당한 걸음과 달리 팔을 위로 쭉 뻗은 채 옆으로 걸으며 “아들, 엄마 잘하고 있어”라고 외쳐 웃음을 자아냈다.
경기 광주시의 장애인거주시설 동산원은 조선 후기 화가 단원 김홍도(1745~1806 이후)의 풍속도 화첩 속 ‘서당’을 무대로 옮겨와 관람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 이촌역부터 행사장까지 ‘인산인해’…약 3000명 유물 축제 즐겨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오후 2시가 넘어가면서 박물관으로 향하는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온 가족 단위 관람객을 비롯해 친구, 연인들이 잇따라 모습을 드러냈다.
행사가 열린 열린마당 계단에는 이른 시간부터 관람객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박물관 도서관 앞 공간에도 관람객들이 줄을 섰다.
박물관이 선착순 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관람 신청은 일찍 마감됐다. 현장에서 별도의 신청 없이 전시실로 이동하다 발걸음을 멈추고 행사를 관람한 사람까지 합치면 이날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은 약 3000명으로 집계됐다.
5명의 심사위원은 무대 표현과 창의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수상자를 선정했다. 대상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백자 청화 연적을 표현한 전은슬 씨에게 돌아갔다.
전씨는 바닥에 직접 누워 잉어가 펄떡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학 생활의 마지막을 기념하기 위해 이번 행사에 도전했다는 그는 대상 수상 소감에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전 세계로 확산될 수도’…박물관 넘어 문화축제로
행사에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언 퀸타르트도 참석했다.
줄리언은 “직접 와서 보니 대단하다”며 “한국에서 시작한 분장놀이가 앞으로는 전 세계에서 펼쳐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짙은 청색 두루마기에 갓을 쓴 모습으로 행사장을 찾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유물을 현대적으로 즐기는 이번 행사의 의미를 강조했다.
유 관장은 “‘전시장 안에 갇힌 유물이 현재에 살아나온 것’”이라며 “박물관이 오래된 유물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즐길 계기를 만든 데 따른 성과”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관람객 수 기준 세계 3위에 오른 점을 언급하며 박물관을 단순히 유물을 관람하는 공간이 아닌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장소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관장은 “‘국중박 분장놀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페스티벌”이라며 “내년에는 더 성대하게 행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