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데스노트’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17년 5월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진보 성향의 정의당에 ‘러브콜’을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성인 피우진 예비역 육군 중령을 국가보훈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정의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신당 소속으로 정치 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민주당은 소수 여당이라서 혼자서는 국회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려웠던 만큼 비록 6석에 불과하지만 정의당의 협조가 절실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이 같은 관계는 이른바 ‘정의당 데스노트’가 탄생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정의당 데스노트란 무엇인가. 문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을 상대로 정의당이 ‘퇴짜’를 놓으면 낙마로 이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이 정의당 데스노트에 이름이 오른 뒤 지명 철회를 당하거나 스스로 사퇴했다. 이쯤 되면 민주당과 정의당이 ‘연립여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보수 야당은 그런 정의당을 겨냥해 ‘민주당 2중대’란 혹평을 쏟아냈다.

 

지난 19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이동하며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2019년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 대통령에 의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그를 상대로 자녀의 대학 및 대학원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그런데도 정의당은 조 후보자를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과 정의당이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정의당 같은 군소 정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하는 내용의 협상을 진행 중인 점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결국 조 후보자는 정의당의 ‘묵인’ 아래 법무장관 임명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뒤 장관직에서 낙마한 데 이어 검찰 기소로 재판에 넘겨졌다. 훗날 대법원은 조 전 장관에게 유죄와 더불어 징역 2년 실형 선고를 확정했다. ‘범법자’를 옹호한 정의당에는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 당시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정치적 오류였다”며 “제게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것”이라고 사과했지만 때는 늦었다. 정의당은 2024년 4월 22대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채 원외 정당으로 전락했다.

 

이재명정부 들어 옛 정의당 데스노트 대신 ‘참여연대 데스노트’란 말이 유행인 듯하다. 지난 19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로써 이재명 대통령이 지명한 김 전 후보자를 비롯해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이진숙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까지 참여연대가 ‘불가’ 의사를 밝힌 4명이 낙마하고 말았다. 참여연대로선 당장의 성과가 자랑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거 정의당이 자기네 이익을 위해 데스노트 등재 기준을 확 낮췄다가 역풍을 맞았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