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진화로 생활 편해졌지만 개인정보 제공 ‘인증 늪’ 불안 中정부의 감시·통제도 고도화 익숙함 경계하고 질문 던져야
베이징에서는 하루가 휴대전화 하나로 돌아간다. 앱으로 장을 보고, 밥을 주문하고, 택시를 부른다. 현금이나 카드를 꺼낼 일은 없다. 장 본 물건은 20분 안에 배달되고, 메뉴판 없이 QR코드로만 주문하는 것도 일반적이다. 택시를 부르면 대체로 2∼3분 안에 도착하는데, 간혹 고도화된 자율주행차가 배차되면 기사가 두 손을 놓은 채 다른 일을 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음식점에서는 로봇이 음식을 나르고, 로봇개가 건물을 돌아다니며 감시한다. 기술과 막대한 인구, 다양성이 결합한 중국의 라이프스타일. 중국은 이미 미래에 도착해 있다는 말이 실제로 살아보니 더 실감 난다.
그 세계로 들어가려면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긴 ‘인증의 늪’이다. 새로운 앱을 내려받을 때마다 여권 사진을 올리고, 얼굴을 여러 모습으로 촬영해 본인 인증을 해야 한다. 계좌를 만들려면 여권과 비자는 물론이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까지 모두 공개된 한국 가족관계증명서를 은행에 내야 한다. 이렇게까지 다 줘도 되나 싶은 불안이 밀려오지만 며칠 지나면 무뎌진다. 앱을 사용하지 못하면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하므로 차라리 빨리 다 주고 편해지고 싶다.
김희원 베이징 특파원
그러다 가끔씩 ‘현타’가 온다. 중국 전화번호를 개통하고 부모님과 처음 통화한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방금 국제전화를 왜 받았는지, 전화를 건 사람과 어떤 관계인지, 어떤 내용을 주고받았는지 물었다. 보이스피싱을 우려해서였던 것 같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개인 채팅방에서 주고받은 대화가 문제가 돼 공안이 집에 찾아왔다는 사연, 중국 지도자를 캐릭터화한 어린이 위인전을 폐기하느라 이삿짐 반입이 늦어졌다는 사연 등을 들을 때면 ‘다 들여다보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고 진짜 세상을 보게 된 것 같다.
도구를 만든 건 기업이지만 그 도구를 쥐고 있는 건 정부다. 중국 정부는 항상 이유가 있다. 국가 안보와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달 15일부터 시행된 새로운 출입국 관리 규정도 그렇다. 전자서류까지 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에 외국인의 통신기록과 노트북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출입국 관리 당국은 “변화된 환경에 따라 출입국 관리를 용이하게 하고 안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이나 반론의 끝은 늘 ‘국가적 특성’이라는 큰 논리로 수렴된다.
그렇다면 중국 바깥은 다른가. 미국을 보자.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지난 회계연도에 국경에서 여행자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뒤진 건수는 5만5318건이다. 전년보다 17% 넘게 늘어난 수치다. 테러와 밀입국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이다. 의심할 만한 사정이 없어도 들여다볼 수 있고,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4억만장 얼굴 사진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 대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용한다. 영장이 없어도 국가 기관이 개인을 감시할 수 있는 영역이 꽤 넓다.
올해 2월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이 정부의 민간인 감시에 기술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국방부와 갈등을 겪었다. 앤트로픽의 빈자리는 곧바로 오픈AI로 채워졌다. 기술이 정부 인프라에 접목되면 기업에는 돈이 되고, 정부에는 관리·감독의 편의를 준다. 그래서일까. 감시와 통제 논의는 뒤로 밀려난 상태다.
한국은 아직 기술을 활용한 감시에 민감하다. 하지만 이 흐름에서 오래 예외로 남을 수 있을까. 기술은 해마다 발달하고 사람들은 삶을 편하게 해주는 도구를 쓰고 싶어 한다. 일상에서 체감하는 불편은 “내 정보가 어디로 새는 것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 정도다. 편리함이 주는 달콤함 앞에서 그마저 쉽게 무뎌진다.
한 번 열린 문은 잘 닫히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질문해야 한다. 내 데이터를 어디까지 내줄 것인지, 목적이 정당하면 모두 괜찮은지, 관리·보안과 감시·통제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는 가능할지. 생각하지 않은 채 편리함에 젖어들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새 익숙해질지 모른다. 불편하지 않고 불편하다는 감각조차 사라진 ‘행복한 감시사회’에 말이다. 중국 대도시의 첨단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