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CC에 ‘달러 거래 완전 차단’ 금융 제재까지 가하나

WSJ, 美 당국에서 입수한 문건 등 보도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ICC 단절 노려”
ICC 소장 배출한 日 입장 더 난처해져

국제형사재판소(ICC) 해체를 공언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조만간 ICC를 겨냥한 금융 제재에 나설 것이란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일본 출신의 아카네 도모코(赤根智子) ICC 소장은 이미 개인 자격으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일본 정부와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는 미국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동맹인 미국과 자국민이 이끄는 ICC 사이에서 일본 정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7월31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왼쪽)이 ICC 해체 방안 등을 보고하는 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청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현지시간) 미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ICC에 대한 광범위한 제재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WSJ이 당국에서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제재안은 6~7개월의 유예 기간을 둔 뒤 기간이 만료되면 ICC가 세계 각국 정부 및 기업들과 하는 거래 대부분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WSJ은 “이 같은 금융 제재는 ICC가 미국 달러화(貨)로 거래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며 “ICC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상당 부분과 단절되면서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 8월 아카네 ICC 소장 등을 겨냥한 개인적 제재를 이미 단행한 바 있다. 미국 내 자산 동결, 미국 입국 금지, 미국 기업과의 거래 제한 등 조치가 제재에 포함됐다. 저명한 국제법학자인 아카네 소장이 미국의 로스쿨이나 연구 기관에서 강연 요청을 받아도 미국 방문이 불가능해 이를 수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앞서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ICC를 “불법적인 국제기구”로 규정하며 “장차 미국 군인들과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기타 시민들도 ICC에 의해 기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리는 이제 그 재판소를 제대로 굴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ICC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이나 미국은 2002년 출범한 ICC에 회원국으로 가입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도 마찬가지다. 반면 한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등 125개국은 회원국으로 활동 중이다. 미국이 ‘ICC 해체’를 공언한 뒤 미 행정부의 압력에 굴복한 몇몇 국가가 탈퇴 선언을 해 회원국 수는 앞으로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원래부터 ICC에 냉담했던 미국은 2024년 11월 맹방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탸냐후 총리를 상대로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뒤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 당시 ICC는 2023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시작한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근거지인 중동 가자 지구에서 민간인 학살 등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동등하게 간주할 수는 없다”며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후 영장 작성과 발부에 관여한 ICC 관계자들을 겨냥한 제재가 시작됐다.

 

일본은 ICC 회원국들 가운데 분담금 납부 등 재정적 측면에서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2024년 3월에는 아카네 ICC 재판관이 일본인으로는 처음 소장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미국의 압박이 본격화하며 아카네 소장은 모국 일본의 지원을 강력히 요청한 바 있다. 다카아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미 행정부의 아카네 소장 제재 조치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