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0원에 부모님 동시 암 투병, 조권이 골반을 털어야 했던 이유

편견 대신 하이힐을 택한, 벼랑 끝 아이돌의 진짜 얼굴

초등학생 시절부터 무려 8년 동안 JYP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버텼던 조권은 2008년 2AM의 리더이자 메인보컬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연습생 동기인 선예와 선미, 현아 등이 원더걸스로 먼저 주목받는 동안 그는 기약 없는 세월을 연습실에서 보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버거운 시간은 길고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지만 그는 무대라는 한 줄기 희망을 붙잡고 견뎌냈다.

무대 위에서는 언제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청년의 치열한 날들. SBS 제공

화려한 데뷔의 문을 통과한 뒤에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기획사들의 정산 시스템은 연습생 시절 들어간 투자 비용이 모두 회수되어야 비로소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였다. 대중의 눈에는 TV를 종횡무진하며 인기를 누리는 스타로 보였겠지만 실제 통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예능 녹화를 마치고 차가운 집으로 돌아온 날, 온수가 나오지 않아 어머니가 찬물로 머리를 감고 있던 광경은 가슴에 대못으로 박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이후 그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품었다. 밥 먹을 돈조차 아끼며 독하게 버텼던 이유다.

 

그 시절 그를 대중에 각인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온갖 망가짐을 불사했던 예능감이었다. 발라드 그룹 2AM의 리더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카메라 앞에서 골반을 털고 춤을 췄다. 속칭 ‘깝권’이라 불리며 인지도가 전무했던 그룹의 이름을 어깨에 메고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우리 결혼했어요’의 아담 부부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아육대’에서 100m 달리기를 휩쓸며 깝사인 볼트로 불렸던 맹활약 역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치열한 도약이었다.

카메라 뒤에 가려져 있던 현실의 무게와 남모를 눈물. SBS ‘인기가요’ 화면 캡처

하지만 진짜 시련은 따로 찾아왔다. 그룹이 자리를 잡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를 앞둔 시점, 집안에는 감당하기 매서운 폭풍우가 몰아쳤다. 부모님이 동시에 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흑색종암으로 발가락을 잘라내야 했고 아버지는 직장암으로 네 차례나 수술대의 칼과 맞서야 했다. 외동아들로서 집안을 지탱해야 하는 무게와 소속사 재계약 시기, 군 입영 영장이 한꺼번에 목을 조여왔다. 데뷔 후 가장 숨 가쁘게 달리며 성취를 맛보아야 할 시기에 경제적 기반과 가정의 안위가 모두 흔들리는 절체절명의 국면이었다.

 

가장 어둡고 막막했던 그때 손을 내민 이는 배우 김혜수였다. 두 사람은 드라마 ‘직장의 신’을 함께 찍으며 인연을 맺었다. 김혜수는 조권의 처지가 벼랑 끝에 몰려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숱한 말 대신 건넨 한마디는 단단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전역만 하라는 당부였다. 김혜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건넨 온기는 홀로 모든 짐을 짊어져야 했던 청년 조권에게 커다란 방패가 되었다.

남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온전히 자신만의 길을 헤쳐 나간 순간. 뮤지컬 ‘제이미’의 한 장면

군 복무를 마친 뒤 조권이 향한 곳은 또 다른 편견과의 싸움이었다. 주변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의 잣대에 갇히는 대신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길을 주저 없이 택했다. 뮤지컬 무대 위에서 아찔한 굽의 하이힐을 신고 드랙퀸 역할을 소화하며 젠더리스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묵묵히 다져나갔다. 파격적인 설정의 뮤지컬 ‘프리실라’나 ‘제이미’ 같은 작품을 맡을 때마다 쏟아지는 날 선 반응과 악플은 그를 항상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흔들림 없이 걸으며 이제는 ‘조권’ 그 자체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대중의 인정을 받고 있다.

풍파를 견뎌낸 끝에 비로소 단단하게 자리 잡은 아티스트의 품격. 뮤지컬 ‘프리실라’ 피날레 인사

카메라 앞에서 언제나 유쾌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청년은 어느덧 서른여덟이 되었다. 부모님은 고된 투병 과정을 지나 다행히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받으며 일상을 이어가는 중이다. 삶의 바닥을 맨몸으로 견뎌낸 세월과 가장 외로운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준 이의 온기를 가슴에 품고, 조권은 오늘도 의연하게 자신만의 무대를 지켜낸다.

 

하이힐의 높이만큼 쏟아졌던 수많은 억측과 오해들. 그 혹독한 계절을 오직 땀방울과 실력으로 돌파해 낸 그는,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대체 불가능한 아티스트로서 빛나고 있다.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피어난 꽃이 가장 오래 가듯, 조권이 걸어온 그 고되고도 뜨거운 기록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는 불빛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