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창고 시신과 500억 [서아람의 변호사 외전]

파주창고 60대 여성 사망 사건
위조 상품권 ‘깡’ 연관 가능성
제작·브로커 등 조직적 유통
사회교란 제도적 허점 막아야

파주시의 한 카페 냉동창고에서 6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약 영하 18도의 냉동창고에 26시간가량 갇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피해자의 시신만이 아니었습니다. 냉동창고 안에서는 액면가 기준 약 500억원에 달하는 가짜 상품권이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사전에 계획한 범행일 것으로 보고 구속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피의자는 상품권 감정과 거래를 위해 피해자를 사건 발생 장소로 부르면서 상품권이 위조라는 것을 들킬 경우를 대비해 피해자를 감금할 목적으로 냉동창고를 준비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의 상품권은 ‘촬영용’ 문구를 넣어 제작한 가품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위조 혐의에서 항상 자유로운 건 아닙니다. 수사기관에서는 해당 가품이 진정한 상품권으로 오인할 정도의 외관을 갖추었는지, 행사할 목적이 있었는지, 실제 유통을 위한 준비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보통의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위해서 가짜 상품권이 500억원어치나 동원되지는 않기 때문에, 이른바 ‘상품권 깡’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서아람 변호사

실제로 상품권 관련 범죄는 대규모로, 한두 장이나 몇십 장이 아닌 몇백 장, 몇천 장을 두고 벌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가증권인 상품권을 위조하는 데는 고도로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위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유통하는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상품권을 정교하게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이걸 보관하고 운반하고, 누군가는 매입자를 모집하여 확보하고, 누군가는 실제로 ‘깡’을 하는 역할을 분담하여 사실상 조직범죄가 됩니다.

 

상품권을 위조하는 데는 몇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특수 프린터기나 컬러복사기로 상품권을 출력하거나 복제해 홀로그램과 아트지를 이용해 가공하는 방식도 있고, 스크래치 상품권에서 이미 스크래치 되어 경제적인 효용을 잃게 된 상품권의 벗겨진 부분에 가짜 은박 필름을 입혀 정상적인 상품권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요즘 만들어지는 위조 상품권은 일반인이 육안으로 봐서는 식별이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전문적인 감정을 통해 미세 문자의 번짐, 은선의 형상, 워터마크의 모양,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형광색사 등을 일일이 확인해야 차이점이 보입니다.

 

이렇게 감쪽같이 진짜 같은 상품권을 만들어내고 나면, 이걸 처분하는 게 더 큰 일입니다. 위조한 상품권은 기존의 상품권 유통 구조에 은근슬쩍 편승하거나, 아니면 정상적인 상품권 시장에 비하면 비교적 진위 확인이 느슨한 환전 시장이나 도박장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수차례 ‘브로커’를 거치게 됩니다. 이 브로커들은 7%에서 많게는 15%까지 수수료를 받고 상품권 유통처를 소개하고 연결합니다. 누가 봐도 명백히 불법인 범죄행위를 하는 것이니만큼, 당연히 운반책도 따로 존재합니다. 렌터카나 퀵서비스 기사를 동원하기도 하고, 보이스피싱에서 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해 길거리에서 서류봉투를 건네주는 식으로 위조 상품권을 옮깁니다. 게다가 위조 상품권이 나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처분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도시와 도시를 연속적으로 이동하면서 빠르게 팔아치워야 합니다.

 

이처럼 도저히 개인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구조의 범행이기에, 중국 국적의 재외동포 등을 중심으로 서로를 모르는 점조직 형태의 집단 범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체포되더라도 조직 전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이른바 ‘일망타진’이 불가능해진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표면에 드러나는 하위 조직원 몇 명만 검거되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고, 정작 범죄수익을 챙긴 총책이나 부총책은 어둠 너머로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들은 또 새로운 조직원들을 모집해 동일한 범행을 반복합니다. 2020년대 초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이른바 ‘타깃 기프트 카드 위조 사건’에서도, 중국 범죄조직이 보이스피싱을 통해 대량으로 편취한 타깃이라는 할인매장의 기프트카드를 ‘러너’라고 불리는 환전책들이 하루에 열 개가 넘는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현금화하는 작업을 통해 최소 25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지만, FBI에 잡혀 기소까지 간 인원은 고작 네 명에 불과했습니다.

 

유가증권 범죄는 법정형이 매우 높습니다. 화폐 유통 질서를 교란하고 사회적 질서를 훼손하는 국가적인 범죄로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가짜 돈, 가짜 상품권’의 유혹은 그 자체로 너무도 강렬하기에,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을 차단할 수는 없기에, 결국은 ‘유통의 익명성’을 만들어 주는 제도적 허점을 막는 수밖에 없습니다. 위조 방지 기술을 강화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유통업자들이 실시간으로 상품권의 진위는 물론이고 상세 발행 정보와 사용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비되어야 합니다. 또한 금융권에서 이상 거래 탐지 절차를 거치듯이, 상품권 시장에도 비슷한 개념을 도입해, 특정인이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지역에서 상품권을 반복적으로 환전하거나, 동일한 종류의 상품권이 일시에 대량 유통된다면 정상적인 거래와 구별해 추가 확인을 거치도록 의무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파주의 냉동창고에서 발견된 500억원의 가짜 상품권은 결국 유통되지 못한 채 종이뭉치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다음번에는 시장으로 흘러들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가장 무서운 경고입니다.

 

서아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