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월 정지용의 시가 해금된다는 소식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 이어서 모 신문은 그의 대표적인 시 ‘향수’를 논평하면서 “거기서 어떤 주의(主義)의 냄새를 찾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라고 하면서 “가슴을 물씬 적시는 건 꿈에도 잊히지 않는 고향의 냄새일 뿐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그의 시 세계를 통해 월북문인으로 찍힌 정지용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신문사의 배려가 담겨 있다. 분단과 동족상잔에 따른 끊긴 민족문학사의 단절이라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었으리라.
이때 이런 해금 소식과 기사를 접한 필자는 정지용의 작품 해금을 반가워하는 가운데 중학교 1학년 시절의 국어 수업시간을 떠올렸다. 당시 국어수업을 맡은 교사는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순위고사에 갓 합격한 초년 여교사이자 우리 반 담임 교사였는데 그는 어느 날 수업시간에 정지용의 ‘유리창 1’ 전문을 칠판에 쭉 적어 갔다. 그리고 그는 그 시의 작가가 정지용임을 밝혔다. 당시 그의 이름이 몇몇 국어 참고서에 간혹 소개되었지만 ‘정OO’으로 표기되어 있어 궁금하면서도 배워서는 안 될 금단의 시인으로 비치던 차였다. 그런데 그는 유신체제라는 엄혹한 분위기에서도 시인의 이름을 과감하고도 정확하게 표기하고 ‘유리창 1’에 담긴 시인의 절제된 슬픔을 까까머리 중학생들에게 해설하였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언급하면서 유리창이 저승과 이승을 가로막는 장벽임을 덧붙였다. 아울러 죽은 자식을 산새에 비유했음을 알려주었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패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 갔구나!”
이후 누구나 그러하듯이 필자 역시 그의 시 ‘향수’를 가곡으로 즐겨 들었고 학생들과 함께 그의 고향 충북 옥천을 찾아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돌아보았다. 그의 시구절 곳곳에서 드러나는 민족 정서와 아름다운 우리말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 교토의 도시샤 대학 캠퍼스에 윤동주 시비와 함께 설치되어 있는 그의 시비를 찾아 세계인으로서의 보편적 시 세계를 만끽하기도 하였다.
김태웅 서울대 명예교수·역사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