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를 자처한 대한민국은 북한을 ‘북괴’로 악마화했고, ‘북한 공산집단’이란 용어가 냉전 시대 초중고 교과서를 지배했다. ‘하나의 조선’ 정책으로 일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남조선을 미제의 식민지로 조롱하며 ‘역도’, ‘도당’, ‘괴뢰’ 등으로 저주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일시적인 화해의 제스처가 있었지만 1972년 10월17일 남한은 유신헌법을, 12월27일 북한은 신헌법을 제정하며 적대적인 분단체제를 공고화했고, 1973년 6월23일 남한은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북한은 고려연방공화국으로 단일 가입을 주장하며 갈라서게 되었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등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북한은 1991년 9월17일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석 달 뒤인 12월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역설적으로 남북한이 서로 다른 국가임을 인정함으로써 남북 대화가 본격화되었고, 1991년 이후 북한에 대한 호칭 역시 ‘북한 공산집단’에서 ‘북한’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남북한의 상호 국호에 대한 공식화된 규정과 발언은 부재한 채 서로를 ‘남측’과 ‘북측’이란 애매한 호칭으로 불러야 했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 관계’로 남북관계를 정의한 기본합의서의 모호한 규정이 지배해 왔다.
강진웅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북한학과 교수
결국 평화의 물꼬를 튼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고, 다섯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역시 북한의 핵실험으로 그 성과가 빛이 바랬다.
더욱이 김정은 정권이 ‘조한관계’로 상징되는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선언한 것은 한반도에 또 다른 긴장을 낳고 있다. 그러나 ‘적대적 두 국가’라는 강한 워딩에도 불구하고 2026년 3월 북한의 헌법 개정에서 드러난 것은 ‘적대성’이 아닌 ‘국가성’이었다. 양날의 검을 품은 북한의 두 국가론은 미국과 대적할 수 있다는 전략국가로서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면서 좌우 정권이 뒤바뀔 때마다 일관되지 못한 남한의 통일정책을 불신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통미봉남의 전통적 노선과 연방제, 우리민족끼리 담론에서 나타난 그간의 이중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단지 민족이란 외투에 국가라는 큰 외투, 그것도 유행 지난 1991년산 외투를 겹쳐 입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통일부는 북한의 이중적 적대론과 남한 일각의 통일무용론을 돌파할 ‘평화적 두 국가론’을 제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한민족의 통일이 아닌 분단체제의 두 국가를 옹호한다는 보수 일각의 비아냥을 들었지만, 이들의 비판이 과거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때 즐겨 썼던 화법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남북통일에서 ‘한조평화’를 모색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단지 둘 사이의 관계를 단절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될 것이다. 평화적 두 국가를 통해 민족적 남북관계에 접근해 가야 하는 것이다. 남북한은 이미 1991년산 국가의 외투를 입은 지 오래이며 각기 헌법에서도 그 국가성을 명문화했다. 국가라는 현실적 외투와 그 브랜드를 인정하는 대신 그 외투 속에서 꿈틀대는 민족의 존재와 통일의 가치를 키워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