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라트비아서 온 은인(恩人)

2019년 여자 배구 국가대표 첫 외국인 사령탑으로 취임한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탈리아)은 2021년 도쿄올림픽 한 달여를 앞두고 치러진 ‘국제배구연맹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3승12패를 거뒀다. 참가한 16개국 중 태국에만 앞선 15위로 대회를 마쳐 우려를 샀었다. 라바리니는 성적 부진에도 세계적 대세인 ‘스피드 배구’(공격수 4명이 전원 달려드는 전략)를 접목하는 데 힘을 쏟았고, 마침내 올림픽에서 ‘4강 신화’를 이끌어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작성한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도 사정은 비슷했다. 2001년 ‘월드컵 리허설’ 격인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의 참패를 당한 데 이어 8월 유럽 전지훈련 중 가진 체코와의 평가전에서도 0-5로 무릎을 꿇었다. ‘오대영’이란 조롱조의 별명까지 붙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당시 ‘一’자 형태의 스리백을 바탕으로 공격-미드필드-수비 간 거리를 좁혀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콤팩트 사커’를 밀어붙였다. 우리 대표팀에 적용하기엔 무리수란 지적도 끊이지 않았으나, 히딩크는 결국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쓴 주역이 됐다



12년 만에 한국 남자 농구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선사한 니콜라이스 마줄스(라트비아) 감독도 작년 12월 부임 후 이번 대회 전까지 거둔 성적은 4승6패에 그쳤다. 그런 와중에도 마줄스 감독은 에이스에게 부담을 몰아주기보다 코트에 나서는 5명 전원이 공수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 농구’를 강조했고, 마침내 아시안게임에서 6전 전승이라는 기록으로 시상대 맨 윗자리를 차지했다. 요르단과의 8강전에서는 대표팀 12명 전원이 득점포를 가동하는 고른 공격력까지 과시했다.

한국 남자 농구의 올림픽 본선 진출은 30년 전인 1996년 애틀랜타 대회가 마지막이다. 마줄스 감독은 한국 대표팀의 첫 외국인 감독으로 선택된 것에 대해 “모든 농구 지도자의 꿈은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것이고, 이런 기회가 나에게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도 라바리니, 히딩크처럼 한국 스포츠를 한 단계 끌어올린 은인으로 존경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향한 그의 무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