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농사 짓다 몸 아파서 이웃에 맡겼는데 투기꾼으로 몰아” [농지 전수조사 보완책]

“관행·불법 단순 구분되나”… 農心 여전히 부글

“보완책 농촌 현실과 괴리” 목소리
“물려받은 땅 강제 처분은 부당”

미등기 상속 농지 등 기준 모호
자진정비·농지은행 위탁 조치도
“고령자들 행정절차 부담 클 것”

정부와 여당이 21일 상속 농지와 고령농, 관행적 임대차 등에 대한 처분 유예와 농지은행 위탁 등 보완책을 내놨지만 농민들은 보완책만으로는 불안이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촌의 현실을 고려한 유예 대상과 처분 기준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불분명하고 농지은행 위탁과 자진 정비 과정에서 고령 농민들이 복잡한 행정 절차를 감당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 방침 및 후속대책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고령이나 질병으로 농사를 중단하거나 도시 거주 상속인이 이웃에게 경작을 맡기는 사례처럼 농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행과 불법을 단순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김선복 강원도 춘천감자생산자협의회장은 “노인들은 힘이 없고 자식들은 외지에 나가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평당 1000원 정도에 임대 주고 겨우 용돈벌이하고 있다”며 “사정을 잘 모르는 어르신들이 확산하는 뜬소문에 상당한 벌금을 내야 할까 걱정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진=국립농산물품짐관리원 제공

전북 남원의 양모(70대)씨는 “아버지께 물려받은 농지를 형제들과 함께 보유하면서 이웃에게 경작을 맡기고 있다”며 “대대로 지켜온 집안 재산을 직접 농사짓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처분해야 한다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의 한 70대 농민은 “평생 흙을 일구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땅을 묵힐 수밖에 없어 이웃에게 농사를 부탁한 게 무슨 죄냐”며 “평생 농사만 지어온 사람들을 투기꾼으로 몰아 처분 명령서를 날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충남 천안의 86세 농민은 “나이가 너무 많아 직접 농사짓기 어려워 이웃에게 논을 맡기고 있는데 이마저 불법이라고 하면 어떻게 살란 말이냐”고 하소연하며 “땅 투기꾼을 잡아야지 나이 들어 몸 아파 밭일 못 하는 시골 노인들의 목을 옥좨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지 거래 절벽이 빚어진 것도 정부 농지 전수조사의 폐해 중 하나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올해 농지 거래량이 전년 동기보다 2.2% 증가했다”고 밝혔지만 농촌 현장에서는 “매수자 부족과 가격 하락으로 개별 농지를 실제 시장에서 처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연원 충남 예산 덕산농협 조합장은 “(정부 엄포에) 농지를 팔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며 일률적인 규제에 반대했다.

 

당정은 이날 상속·고령농의 농지는 투기 목적이 아니라면 일률적인 처분을 피하고, 관행적 임대차와 휴경은 자진 정비나 농지은행 위탁을 통해 처분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내용의 보완책을 내놨다. 임차농 보호를 위한 특별 정비기간도 11월15일까지 연장한다.

 

하지만 농민들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농업 현장에서는 상속인이 여러 명인 농지나 미등기 상속 농지, 계약서 없이 이웃끼리 경작해 온 농지 등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임차농 역시 임대차 관계가 위법으로 판단되거나 소유자가 농지를 처분하면 영농 규모와 소득 기반이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길섭 한국후계농업경영인 전북도연합회 사업부회장은 “경자유전 원칙과 투기 목적 농지 이용을 막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농지은행 위탁과 자진 정비가 실제 농민들에게 어떤 부담으로 작용할지 불안감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전수조사가 농민을 관리하고 처벌하는 방식으로 흐르지 않고 농민들이 법률과 행정 절차를 이해하도록 적극적인 현장 행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당정 보완책에 대해 “관행적 임대차를 허용하고 원래 농사짓던 농민들에게 임대를 주겠다는 부분은 어느 정도 진전이 있다고 본다”며 “다만, 대부분 임대차를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해 하겠다는 건데, 수수료 등 임대 방식에 대한 보완책과 실경작 농민에 대한 영농권 부여 시점 등에 대한 내용은 없어 많은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