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권준영 기자]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뺨을 한 대 때려봤다. 꿈이 아니더라. 꿈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테크볼의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된 이준석(27)은 금메달을 목에 건 다음 날에도 자신이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기쁨을 전한 뒤 그가 꺼낸 이야기는 자신보다 테크볼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이준석은 21일 일본 나고야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금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 “수없이 많이 상상했고 꼭 이루고 싶었던 결과인데 금메달을 따게 돼서 꿈같다. 너무 행복하다”며 “많은 응원과 격려 덕분에 이 자리에 오게 됐다. 테크볼이 조금 더 알려진 것 같아서 많이 기쁘다”고 벅찬 심경을 밝혔다.
이준석은 전날 일본 나고야 히가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리 잘릴 메즈헤르 알레야위(이라크)를 2-0(12-11 12-5)으로 꺾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테크볼의 남자 단식 초대 챔피언이다.
테크볼은 곡선형 특수 테이블에서 축구공을 주고받는 종목이다. 이준석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영상으로만 봐왔다. 선수들이 꿈같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저게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준석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결승에서 한 점을 낼 때마다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할 때 항상 파이팅 넘치게 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라며 “상대가 이라크 선수였고 중동 선수들이 기싸움을 많이 해서 거기에 밀리지 않으려고 소리를 많이 질렀다”고 웃음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 테크볼 대표팀이 금메달을 준비한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회장 유승민)는 당초 테크볼 대표팀의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입촌을 검토했지만 기존 국가대표 종목들의 훈련이 몰리면서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대표팀은 선수촌 밖에서 대회를 준비했다.
전용 훈련 공간을 구하기 어려워 야외에서 훈련했고, 이후 경기 이천 호법레포츠공원 실내 족구장을 빌려 합숙했다. 이준석과 이태빈(25), 김은준(24), 장은서(21) 등 4명의 선수가 서로 훈련 파트너가 돼 하루 두 차례씩 훈련했다. 전담 지원 인력도 충분하지 않아 경기가 없는 선수가 출전 선수의 장비와 컨디션을 챙겼다.
이준석은 “선수가 많지 않다 보니 선수이자 전술가 역할까지 해야 했고, 스태프가 없어 그날 경기가 없는 선수가 뛰는 선수를 도와야 했다”며 “땡볕에서도, 비를 맞으면서도 함께 훈련한 동료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훈련할 때는 ‘우리가 정말 국가대표가 맞나’라는 생각도 들었다”며 “이제 좋은 결과가 나온 만큼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준석은 축구 선수 출신으로 족구를 거쳐 테크볼에 뛰어들었다. 생계를 위해 대기업 생산직으로 일하던 그는 테크볼이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회사를 그만두고 대회 준비에 전념했다.
동료들도 각자의 생업을 내려놓았다. 남자 복식에서 이준석과 호흡을 맞춘 이태빈은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보석 디자인 일을 그만뒀고, 혼합 복식에 출전한 김은준은 국가대표가 된 뒤 제약회사 족구팀을 나왔다.
이들의 고민은 금메달로 끝나지 않는다. 국내에는 아직 테크볼 실업팀이 없어 선수들이 생업과 운동을 병행하거나 생업을 내려놓고 대표팀에 매달려야 한다.
이준석은 “아직 테크볼에는 실업팀이 없다. 선수들이 생계를 내려놓고 약간은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업팀이 생겨 안정적으로 운동할 수 있고, 유소년과 대학부까지 이어지는 기반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대한테크볼협회는 2018년 설립 이후 국내 보급과 선수 육성을 이어왔지만, 아직 정가맹 종목단체가 아니어서 국가 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도 재정 문제로 선수단 파견을 고민했고, 협회 관계자들이 합숙훈련과 대회 출전 비용 등을 지원했다.
이번 금메달을 계기로 훈련 환경에는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대한체육회는 이날 “테크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용섭 대표팀 감독은 “선수촌에 꼭 들어가고 싶다는 얘기를 팀원들과 항상 나눴는데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