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물건을 팔기 전 비슷한 제품을 검색해 가격부터 맞춰보던 과정이 사라지고 있다. 네이버와 당근에 이어 중고폰 전문업체까지 인공지능(AI)을 앞세워 적정 시세를 자동으로 제시하면서다. 가격을 정하고 상품 설명을 쓰는 일까지 AI가 대신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의 경쟁 영역도 매물 확보에서 가격 데이터와 AI 기술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22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중고거래 서비스 플리마켓에 AI 시세 추천 기능을 도입했다. 플리마켓과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동일·유사 상품의 정보와 가격대를 분석해 판매자가 등록하려는 상품의 시세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판매자가 상품 상태를 새 상품부터 사용감 많음까지 선택하면 AI가 이를 반영한 가격 정보를 보여준다. 우선 스포츠·레저와 디지털·가전 분야에 적용됐으며 다른 카테고리로 확대된다. 오는 30일부터는 구매자도 판매자가 매긴 가격과 AI가 제시한 시세를 상품 상세 화면에서 비교할 수 있다.
상품 등록 과정에도 AI가 들어갔다. 사진을 올리면 네이버의 이미지 검색 서비스 스마트렌즈가 쇼핑 데이터와 비교해 상품명과 브랜드, 카테고리 등을 찾아낸다. 제품 상태와 특징을 반영한 설명도 자동으로 작성한다.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스마트렌즈 도입 전인 지난달 23~29일과 도입 후인 이달 6~12일을 비교한 결과 플리마켓 안전거래 상품 등록 건수는 하루 평균 20% 증가했다. 패션·의류는 38%, 출산·육아 상품은 40.5% 늘었다.
네이버만 뛰어든 것은 아니다.
당근은 이미 중고거래 가격 산정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아이폰과 갤럭시를 대상으로 AI 스마트폰 시세 조회 서비스를 전국에 선보였다.
단순 평균 가격만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다. 기종을 선택한 뒤 파손 여부와 생활 흠집, 배터리 상태 등을 입력하면 조건에 맞는 시세와 가격 변동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비슷한 상태의 매물과 판매 성공률이 높은 가격대도 함께 제시한다.
지난해 7월에는 범위를 스마트폰 밖으로 넓혔다.
당근 앱에서 주변 물건을 촬영하면 AI가 사진 속 제품을 인식하고 예상 판매 가격을 알려주는 내 물건 가격 찾기 기능을 도입했다. 무선 마우스처럼 제품을 촬영하면 AI가 브랜드와 제품 종류 등을 판단해 예상 가격을 제시하는 식이다.
바로 판매할 수도 있다. AI 판매 글쓰기 기능을 선택하면 사진 속 제품의 브랜드와 제품명, 색상 등을 분석해 제목과 설명을 작성한다. 이용자는 가격과 거래 장소 정도만 정하면 된다.
네이버와 당근 모두 이용자가 직접 비슷한 매물을 찾아 가격을 비교하던 과정을 AI가 대신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차이가 있다면 AI가 참고하는 거래 데이터와 상품 분류 체계가 각 플랫폼 안에 쌓인 데이터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같은 중고 제품이라도 플랫폼마다 추천 가격이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중고폰 시장에서는 가격 추천을 넘어 AI가 제품 상태까지 직접 검사하는 서비스도 자리 잡았다.
중고폰 플랫폼 민팃의 ATM에 휴대폰을 넣으면 AI가 단말기의 성능과 외관 상태 등을 진단한 뒤 매입 가격을 제시한다. 판매자가 가격을 받아들이면 계좌로 판매대금이 입금되는 구조다.
민팃은 AI 상태 판단 기술에 24만장 이상의 데이터를 학습시킨 비전 AI를 적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람이 직접 흠집이나 파손 정도를 판단하는 대신 이미지 데이터를 활용해 제품 상태를 분류하는 방식이다.
온라인에서 예상 시세를 먼저 확인할 수도 있다. 다만 민팃 역시 홈페이지에서 제시하는 가격은 예상치이며 실제 매입가는 ATM 진단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안내한다.
다만 AI가 제시하는 숫자가 곧 중고 제품의 절대적인 시장가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는 플리마켓과 카페에 쌓인 상품 정보를 활용하고, 당근은 자사 플랫폼의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다.
민팃은 직접 휴대폰을 매입하는 만큼 제품 상태와 자체 매입 기준까지 가격에 반영된다. 같은 스마트폰이라도 플랫폼에 따라 가격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글로벌 중고거래 플랫폼 이베이는 판매자가 상품을 등록할 때 자사에 축적된 거래 데이터를 활용해 판매 가격과 배송비를 추천하는 기능을 운영해왔다.
이베이는 과거 11억개가 넘는 상품 목록과 누적 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을 식별하고 적정 판매가격을 제안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판매자가 직접 유사 상품을 검색해 가격을 조사하는 과정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중고거래 시장에서 AI 경쟁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실제 상품과 가격 데이터를 확보했느냐로 모인다.
AI가 사진을 보고 상품을 알아맞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모델이라도 사용 기간과 흠집, 구성품, 거래 시기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플랫폼에 쌓인 매물과 거래 데이터가 많을수록 세분화된 가격을 제시할 여지가 커진다.
중고거래의 오래된 고민이었던 정보 격차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판매자는 지나치게 낮거나 높은 가격을 매길 위험을 줄이고, 구매자는 판매자가 부른 가격이 시장 수준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특정 플랫폼의 AI 가격만 믿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마다 확보한 거래 데이터와 가격 산정 기준, 매입 여부가 다르기 때문이다. AI가 중고 제품의 가격을 대신 정해주는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마지막 가격 비교까지 AI 하나에 맡기기는 아직 이르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