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황금연휴를 앞둔 23일 아침, 서울 도심 오피스가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출근길 풍경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했다. 빌딩 숲 횡단보도를 건너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대화의 주제는 단연 ‘퇴근 시간’이었다. “오늘 몇 시에 끝날까”, “우리는 일찍 보내주려나” 같은 기대와 눈치가 교차하는 가운데, 연휴 전 마지막 근무일의 하루가 시작됐다.
하지만 출근 직후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선 직장인들의 표정은 기업 규모와 업종, 문화에 따라 엇갈렸다.
서울 시내 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30대 직장인 신 모 씨에게 연휴 전날 조기 퇴근은 새삼스러운 복지도 아니다. 사내 공식 공지는 당일 오전에 전달되지만, 매년 명절마다 점심 식사 직후인 오후 1~2시에 업무를 마쳐왔기 때문이다. 신 씨는 “남들보다 반나절 일찍 자리를 정리할 수 있어 귀성길 정체를 피하거나 개인 휴식 계획을 세우는 데 여유가 있다”며 “항상 그래왔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관례로 여긴다”고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이나 결제·마감 일정을 앞둔 부서의 직장인들에게 연휴 전날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 숨 가쁜 하루다. 긴 연휴 동안 멈출 업무 공백을 미리 메워야 해 조기 퇴근은커녕 정규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까지 꼼짝없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처지다.
서울 마포구의 한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김 모(33) 씨는 “소셜미디어(SNS)에는 점심 먹고 퇴근했다는 지인들의 인증 글이 쏟아지는데, 우리는 연휴 전 업무를 털어내느라 쉴 틈도 없다”며 “연휴 전날 조기 퇴근 여부야말로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가장 현실적인 ‘명절 복지 격차’”라며 씁쓸해했다.
실제로 명절 전날 2~4시간 일찍 업무를 끝내는 단축 근무 문화가 확산하고 있지만, 기업 문화에 따른 양극화는 여전하다.
주요 취업포털들이 명절을 앞두고 실시하는 직장인 설문조사 결과들을 종합하면, 연휴 전날 조기 퇴근 혜택은 주로 대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여전히 절반 이상의 일반 직장인들은 연휴 전날에도 정규 퇴근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거나 마감 업무를 치르는 실정이다.
반면 조기 퇴근 여부가 회사의 복지 만족도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직장인들의 목소리는 꾸준히 높게 나타나고 있어, 상여금 액수 못지않게 ‘시간 복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최근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조기 퇴근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무실이라고 해서 업무 효율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연휴를 코앞에 둔 탓에 오후가 되면 집중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이른바 ‘명절 루팡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는 “거래처 담당자들도 다 일찍 퇴근해서 전화해도 회신이 없는데 왜 자리를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후 내내 멍하니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는 식의 하소연이 명절마다 단골로 올라온다.
한 중견기업 인사 담당자는 “거래처와 협력사들이 대부분 조기 퇴근하는 추세라 사실상 오후 3시 이후에는 정상적인 업무 진행이 어렵다”면서도 “제조 현장과의 형평성이나 내부 근태 규정 때문에 전사 조기 퇴근을 공식화하지 못하고 부서장 재량에 맡기는 기업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