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왜 하는지… 세 분 스승님의 가르침 제자들에게 ‘내리사랑’ 오히려 배울 때 더 많아” [나의 삶 나의 길]

서울대 음대교수·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오늘을 있게 한 세분의 선생님
7살 때 만난 양해엽 교수에게 기초 닦아
미 커티스음악원서 만난 로잔드 선생님
폭풍같은 과제하며 레퍼토리 무한 확장
미리암 선생님은 생각하는 음악 열어줘

이십대 데뷔한 콩쿠르
伊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 1위없는 2위
獨 하노버 요아힘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출발 늦었지만 출전하는 대회마다 입상
30대 초반 서울대 교수 임용…2026년 7년 차

문자 예의까지 가르치는 교수님
학생들에 기본기만큼 예의·인성 강조해
때론 문자 첫머리 인사법까지 가르치기도
쇼스타코비치 같이 극적인 음악보다는
브람스·베토벤처럼 서사 긴 음악 좋아
“미리암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연습할 때 무슨 생각을 하니’ 하고 물으셨어요. 저는 음정·박자·테크닉이 중요하니까 ‘음정이 맞아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첫 대답이 ‘음악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였대요. 선생님이 그렇게 질문으로 훈련을 시켜주시니까 생각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더라고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세계일보와 만난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서울대 교수.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음악을 묻자 “머리는 차갑고 싶은데 가슴은 뜨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희태 기자

스무 살을 넘겨서야 국제콩쿠르에 본격적으로 나섰지만 출전한 대회마다 입상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38). 2010년 이탈리아 파가니니 국제콩쿠르 1위 없는 2위, 2012년 독일 하노버 요아힘 국제바이올린콩쿠르 우승 등 출전한 국제콩쿠르마다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곡의 서사를 끝까지 쌓아 올리는 연주로 까다로운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도 호불호 없이 믿고 찾는 연주자가 됐다. 2020년 30대 초반에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된 것도 올해로 7년차다.

그를 키운 큰 스승은 셋이다. 대전 ‘다미 피아노집’ 딸내미로 자라서 스즈키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그를 일곱 살 때부터 지도한 양해엽(1929∼2021) 전 서울대 교수, 중학생 때 건너간 미국 커티스음악원에서 만난 에런 로잔드(1927∼2019), 보스턴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사사한 미리암 프리드다. 양해엽이 김다미 바이올린 세계의 기초를 놓았고 로잔드가 방대한 레퍼토리로 단련했으며 프리드가 스스로 생각하는 연주자로 성장시켰다.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김다미는 세 스승을 만난 “순서가 너무 좋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예순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양해엽은 젓가락 쥐는 법까지 바로잡을 만큼 엄격했다. 그래도 혼날 때면 어린 마음에도 스승의 애정이 느껴졌다. 현악 연주자라면 반드시 거치는 칼 플레시 스케일 교본을 양해엽은 세세하게 가르쳤다. 다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까지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배운 이유를 김다미는 요즘도 문득 깨닫는다. 같은 교본으로 제자들을 지도할 때다. “학생들에게 칼 플레시로 기본기를 가르치다 보면 ‘이래서 양 교수님이 이런 방식으로 연습하라고 하셨구나’ 하고 깨달을 때가 많아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2026.09.21. 유희태 기자

커티스에서 만난 로잔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곡을 숙제로 내줬다. 당시엔 버거웠지만 콩쿠르에 나가고 전문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그 고마움을 알았다. 지금 무대에 올리는 작품 상당수가 그때 배운 곡이다.

 

“한국에서는 중고등학생 때 콩쿠르와 입시가 중요하니까 한 곡을 굉장히 완성도 있게 파고 또 파는 경우가 일반적이에요. 일찍 유학 간 친구들은 대체로 10대 때 레퍼토리를 많이 확장해 놓고 20대에 다시 꺼내 완성도를 높여요.”

 

학생 앞에서 시범을 보이다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손가락이 생각보다 잘 돌아가서다. 10대 때 익혀둔 움직임이 몸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다만 칭찬 없이 엄격한 두 스승 밑에서 김다미의 자신감은 크게 자라지 못했다.

 

프리드는 그런 제자에게 칭찬부터 건넸다.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던 김다미는 선뜻 믿지 못했다. 칭찬할 때마다 ‘노, 노’ 하며 손사래를 치는 제자에게 프리드는 자신이 잘한다고 평가하는데 왜 감히 그 말을 부정하느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양해엽과 로잔드도 제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훗날에야 알았다. 양해엽은 일고여덟 살 제자를 두고 “시키는 대로 안 하는데 너무 잘해서 그냥 포기했다”며 주변에 자랑했다고 한다.

 

프리드의 또 다른 가르침은 질문이었다. ‘이렇게 해라’라는 지시를 따르는 데만 익숙했던 그에게 프리드는 ‘왜 그렇게 연주하느냐’고 물었다. 답을 찾지 못하는 자신이 무능하게 느껴져 수업이 두려운 날도 있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바보처럼 ‘모르겠다’는 말만 하고 있을까.” 다행히 질문을 거듭 받으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자랐다.

중학생 때부터 후배들을 가르친 김다미에게 레슨은 익숙했지만 서울대 교수로서 처음 겪는 직장 생활은 새로운 과제였다. 적응하는 데 1년쯤 걸렸다. 지금은 일대일 레슨으로 한 학기에 14명가량을 가르친다. 기본기만큼 강조하는 것이 예의와 인성이다. 문자 첫머리에 ‘안녕하세요’를 쓰는 일부터 가르쳐야 할 때도 있다. 유학을 앞둔 제자가 외국 교수에게 보내는 영어 이메일도 직접 읽어보고 더 정중한 표현으로 고쳐준다. 좁은 음악계에서 평판은 중요하고, 같은 행동도 상대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다.



“학생들에게 항상 ‘음악은 자유로워도 좋은데 행동은 자유롭지 않은 게 좋다’고 얘기해요.”

학교생활에 대해 들어보니 김다미는 자나 깨나 제자 걱정이다. 두 달 반 방학을 보내고 만나는 학기 초에 특히 걱정이 많다. 일시적으로 의욕을 잃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 안타깝다. 수업 전날 급히 연습한 티가 나는 연주를 들을 때면 속이 탄다. 선생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실력을 쌓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정작 자신은 스승들이 연습을 그만하고 놀면서 하라고 말리던 학생이었다.

“20대는 주변에서 ‘너무 많이 한다’고 연습을 말릴 정도로 본인 악기를 향해 야생마처럼 달려가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변에서 말리는 게 아니라 연습하라고 시켜야 하니까 그런 부분은 제가 공감을 좀 못 해주는 거죠.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2026.09.21. 유희태 기자

세 스승에게 직접 전수받은 레슨의 당근과 채찍은 제자마다 다르게 쓴다. “제가 소리 지르는 스타일은 아닌데 매우 차가워질 수는 있습니다.”

가르침은 자신에게 돌아오기도 한다. 인터뷰 당일 오전에는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가르쳤다. 자신도 20대 때부터 여러 차례 연주한 작품이다. 특정 대목에서 추상적인 색채가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여러 기법을 시범 보이다 새로운 표현을 발견했다. 다음번 자신의 연주에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생한테 얘기하면서 마치 제가 저한테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10년 동안 열 번 연주했던 곡인데도 새롭게 발견하는 해석이 있거든요.”

김다미는 가르치면서 무대도 부지런히 지킨다. 올봄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 참여했고 5월에는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피아노 없이 홀로 서는 무반주 독주회를 열었다. 다음 달 9일과 10일에는 서울국제음악제에서 각각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와 브람스 ‘세레나데 1번’을 연주한다. 브람스 작품은 실내악 편성으로 들려준다.

공교롭게도 그는 쇼스타코비치를 “온전히 제 음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자극적인 순간이 이어지는 음악보다 서사를 길게 쌓아가는 음악에 끌린다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2026.09.21. 유희태 기자

“베토벤을 제일 좋아하고 브람스도 좋아해요. 기승전결을 길게 끌고 가면서 확실한 음악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도 정말 자극적인 순간은 나중을 위해 남겨두자고 해요. 사람들이 ‘언제 터지나’ 생각하는 순간 터져야 확실한 클라이맥스가 되는 거죠.”

바이올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오랫동안 빌린 명기로 연주했다. 일본 재단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두 대를 각각 2년과 3년 썼고 금호문화재단에서도 악기를 대여받았다. 때로는 몇십 년 묵혀 있던 악기를 깨워 이제야 비로소 악기다운 소리가 나는데 돌려줘야 했다. 그래서 정든 악기와 다시 이별하고 싶지 않아 2021년 평생 쓸 작정으로 현대 악기를 장만했다. 그런데 올해 1월 이탈리아 고악기의 진가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한 이탈리아 악기 수집가로부터 “여러 사람에게 추천받았다”며 명기 무상 대여를 제안받았다. 수집가가 보내온 ‘카파’ 두 대를 두고 그는 오래 고민했다. 17세기 이탈리아 제작자 카파가 만든 바이올린은 김다미 표현대로라면 하나는 정제되지 않은 독한 위스키처럼 자극적이고 거칠었고, 다른 하나는 처음 활을 댄 순간부터 몸에 감겼다. 마치 장미와 백합 같았는데 김다미는 백합을 골랐다.

“제 음악적 성향 자체가 너무 자극적인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백지 같은 상태에서 제가 더 훈련해서 작곡가마다 더 자극적으로든 더 청초하게든 만들어 가고 싶지, 악기의 도움을 너무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만들고 싶은 연주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서울대 음대 교수 겸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는…

 

△1988년 대전 출생 △2001년 금호영재콘서트 데뷔 △예원학교·미국 커티스음악원·뉴잉글랜드음악원·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2010년 이탈리아 파가니니 국제콩쿠르 1위 없는 2위 등 콩쿠르 다수 입상 △2015년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독주회 데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북독일방송교향악단, 벨기에 국립오케스트라,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등과 협연 △드보르자크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2018), 소품집 ‘타임패스’(2022) 발매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2020년∼ 서울대 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