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남정훈 기자] “40대 최고령 치어리더라는 타이틀이요? 예전엔 나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 싫었는데...이제는 여전히 열정을 잃지 않고 자기 관리를 잘 한다는 증거니까 이젠 감사하죠.”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춤을 좋아하고 남들 앞에서 뽐내는 걸 즐겼던 스무 살짜리 무용과 대학생이 하나 있었다. 그는 알았을까. 23년 후, 업계 유일의 40대 치어리더로서 매일 밤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을 만나고 있을 줄. 프로야구 SSG의 치어리더 배수현(42)씨는 선수들에게나 주로 붙는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릴 정도로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SSG와 한화의 맞대결이 펼쳐진 지난 10일 인천 연수구 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난 배씨는 “2003년 시즌 중반 때 우연한 기회에 치어리더 일을 하게 됐고, 이듬해부터 정식으로 프로필 사진도 찍고 입문했죠. 그게 벌써 23년 전이네요”라며 데뷔 당시를 떠올렸다.
지금이야 이르면 10대 후반부터 치어리더를 시작하는 여성들이 있을 정도로 선망의 직업이 됐지만, 배씨가 데뷔하던 시절엔 달랐다. “그때만 해도 나레이터 모델과 비슷한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무슨 직업인 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젠 선수 및 스포츠 현장과 팬들 사이에서 퍼포먼스로 가교 역할을 해주는 직업으로 인식도 많이 개선됐죠. 진짜 전문직이 된 것 같아 뿌듯해요”
겉보기에 화려하고, 팬들의 사랑을 듬뿍받는 ‘준 연예인’ 같은 직업이 된 치어리더. 배씨는 화려한 모습만 보고 섣불리 입문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저희가 한 경기를 위해 준비를 엄청 많이 하거든요. 주 3~4회, 하루 6~7시간씩 꼬박 연습을 해요. 체력뿐만 아니라 외모가 중요한 직업이니 자기 관리는 필수죠. 팀으로 움직이니 동료들과의 인간관계도 잘 맺어야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스포트라이트가 오지 않는 것을 견뎌낼 수 있는 인내심까지. 절대 쉽게 생각하면 안 돼요”
1984년생, 마흔을 넘겼으니 대부분 배씨가 체력적으로 힘들 것이라 예상하겠지만, 오산이다. 치어리더를 더 오래 하고 싶어 시작한 운동 덕분이다. 국제보디빌딩연맹 프로 비키니 선수로도 활약 중인 배씨는 자타공인 ‘머슬퀸’이다. “20대 시절에 비해 체력이 떨어진 건 부인할 수 없죠. 당연한 흐름이라 생각해요. 그래도 꾸준한 운동과 생활 습관 덕분에 열정이나 체력이 그리 많이 떨어진 건 못 느껴요. 여전히 9회까지 소화해도 거뜬하거든요”
지난 2023년 8월, 배씨는 유명 토크쇼인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청각장애를 고백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치어리더 데뷔 초창기 때도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치어리더로 꽤 이슈가 됐다. 초등학교 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은 그는 현재도 왼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고, 오른쪽 귀는 조금 들을 수 있는 정도다.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춰야 하고, 팬들과 현장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포착해야 하는 치어리더로선 치명적 약점이다. “솔직히 일할 때 불편하긴 하죠. 남들보단 느릴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더 들으려 집중해요. 주변에서도 많이 도와주시고. 그래서 저를 ‘극복’이라는 키워드로 바라보지 말았으면 해요. 저는 장애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거든요. 대신 춤 실력을 더 키우고, 팬들과 더 소통하고, 꾸준한 운동으로 관리도 더 철저히 하는 식으로 장점을 극대화했죠. 그저 ‘치어리더 배수현’으로 봐주세요”
2003년 SSG의 전신인 SK에서 시작해 2026년 현재도 SSG에서 치어리더를 하고 있는 배씨는 ‘원 클럽 우먼’이다. 팬들 사이에선 언젠가 배씨가 치어리더를 그만두면 영구결번을 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만큼 SSG 팬들의 배씨를 향한 사랑은 절대적이다. “한 팀에 이렇게 오래 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구단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함이나 자부심은 있죠. 20년이 넘었으니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많은데, 아니에요. 여전히 그래요. 올해도 9연패를 끊었던 날,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분명한 건, 배씨가 치어리딩을 해온 날보다 할 날이 짧을 거란 사실이다. 슬슬 은퇴 이후의 삶을 생각할 때다. “20년 넘게 치어리딩을 해온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잘 연결해주고 싶어요. 운동과 치어리딩을 접목한 컨텐츠도 만들어 강단에 서보고 싶단 생각도 해요. 치어리더라는 직업이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어요. 하지만 아직 은퇴는 멀었어요. 저는 아직 현역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