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내 편일수록 가차 없이 검증하라

좋은 평판에 경계심 무너뜨리고
‘도덕적 면허’가 검증의 눈 가려
장관 인사 실패 악순환 막으려면
더 혹독한 검증 시스템 만들어야

이재명정부 2기 개각 과정에서 용혜인 의원에 이어 김승원 의원까지,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연이어 인사 검증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낙마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고위 공직자 인사 실패의 원인으로 언론은 흔히 폐쇄적인 회전문·코드 인사, 턱없이 부족한 검증 기간, 진영 간의 소모적인 정쟁 구도를 꼽는다. 김승원 후보의 낙마에는 식약처 신약 로비사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성추행사건, 추가 음주 운전, 회계 부정 등 국민 눈높이와는 동떨어진 후보자의 경력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정권과 시대를 불문하고 반복되는 인사 실패의 가장 깊은 뿌리를 파헤쳐 보면, 이 모든 요인을 관통하는 가장 위태로운 심리 기제가 바로 ‘도덕적 면허 효과(Moral Licensing)’다.

도덕적 면허 효과란 과거에 쌓은 선한 행적이나 올바른 이미지가, 역설적으로 이후에 저지르는 흠결이나 잘못을 스스로 혹은 주변에서 관대하게 용인하도록 만드는 심리적 정당화 현상을 뜻한다. 이 개념은 2001년 프린스턴대학의 심리학자 베누아 모냉과 데일 밀러의 연구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실험을 통해 ‘나는 편견이 없는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자격표를 얻었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이후 상황에서 오히려 더 쉽게 차별적이거나 편향된 언행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일상에서도 이런 모습은 흔히 발견된다. 아침에 고된 운동을 마쳤으니 저녁에 고칼로리 디저트를 먹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합리화하는 심리가 대표적이다. 인간은 자신이 해온 ‘선한 행동’이나 ‘바른 이미지’를 마치 은행 통장의 예금 잔액처럼 여긴다. 그리고 그 잔액이 넉넉하다고 믿는 순간, 도덕적 경계심을 해제하고 자신과 타인의 작은 흠결을 눈감아 준다.



이 도덕적 면허 효과가 인사 검증 국면과 만나면 매우 위험한 양방향 폭주를 시작한다. 첫째는 후보자 본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기 합리화다. ‘나는 평생 개혁과 약자를 위해 헌신해 왔으니, 이 정도 개인적 편법이나 흠결은 대의를 위해 이해될 수 있다’는 정당화가 형성된다. 둘째이자 더욱 치명적인 방향은 검증을 담당하는 인사권자, 참모진, 그리고 지지층의 심리다. ‘이 사람은 평생 바르게 살아온 동지이므로, 제기된 의혹은 흠집 내기용 공세에 불과하다’며 대리 면허를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것은 두 번째 심리다. 후보자 본인이 아무리 자만에 빠져 있더라도, 검증 라인이 냉정하게 칼을 대면 결함은 걸러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례는 이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서울대 법대 교수이자 진보·개혁 진영의 대표적 아이콘이었던 그는 문재인정부의 핵심 개혁 과제를 이끌 적임자로 꼽혔다. 그러나 자녀 입시 비리와 논문 저자 등재 등 이른바 ‘부모 찬스’ 의혹이 불거졌을 때 초기 검증 라인과 지지층은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방어막을 쳤다. 강력한 개혁적 이미지가 인사 검증의 잣대를 무디게 만드는 면허장으로 작동한 셈이다. 결국 징역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정권 전체에 씻을 수 없는 정치적 타격을 남겼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 과정 역시 판박이다. ‘신약 로비·청탁’ 의혹이라는 치명적인 내용이 제기되었음에도, 여당 주도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는 등 당정의 방어막이 굳건했다.

이후 성추행 의혹 등 민심의 거센 역풍 속에 지명 20일 만에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며 자진 사퇴해야 했다. 권력의 중심부에서 오래 활동하며 스스로를 ‘바른 편’이라 여겨온 인사일수록, 자신과 동지에게 관대한 도덕적 면허를 발급했던 관성이 또다시 되풀이된 것이다.

이 심리가 지닌 가장 큰 위험성은 매우 반직관적이라는 점에 있다. ‘헌신적이다’, ‘도덕적이다’, ‘개혁적이다’라는 평판이 고평가된 후보일수록 검증 시스템은 오히려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버린다. 훌륭한 평판이 인사 검증을 무력화하는 최악의 걸림돌로 둔갑한다. 결국 이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한 결론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반대로 가야 한다. 평판이 좋고 개혁적인 인물일수록 검증의 잣대는 훨씬 더 혹독할 만치 철저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내려놓고 가장 까다로운 눈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는 한, 인사 검증 실패라는 무거운 국정 손실은 정권과 관계없이 똑같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