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는 방침에 흔들림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요즘 일본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겨냥한 경고 메시지로 풀이된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다카이치는 22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 2025년 10월 취임한 다카이치가 젤렌스키와 대면한 것은 올해 6월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 3개월 만이다.
다카이치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6월 에비앙에서 이야기를 나눈 이후 처음으로 다시 만났다”며 “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조국의 평화를 위해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루라도 빨리 ‘공정하고 영속적인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각국이 단결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G7의 일원으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국제사회의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2023년 3월에는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개전 후 일본 정상으로는 처음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날 다카이치는 “일본은 우크라이나와 함께한다는 방침에 흔들림이 없다”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 제재에 나설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협력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다카이치를 향해 젤렌스키는 감사의 뜻을 표함과 동시에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처한 상황에 관해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와 일본 간에는 쿠릴 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 영토’)을 둘러싼 영토 분쟁이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쿠릴 열도 남단에 있는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擇捉), 쿠나시르(쿠나시리·國後), 시코탄(色丹), 하보마이(齒舞) 4개 섬은 원래 일본 영토였는데 2차대전 말기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한 소련(현 러시아) 군대가 점령했다. 195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강화 회의가 열려 2차대전 당시 연합국들과 일본 간에 평화 조약이 체결됐을 때 소련의 반대로 북방 영토 문제는 합의 대상에서 빠졌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 이후에도 소련 및 그 후예인 러시아와 북방 영토 반환 및 2차대전 종전 협정 체결을 위한 양자 회담을 벌여 왔다. 그런데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푸틴은 일본의 대러 제제 동참을 이유로 일본과의 모든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지난 8월13일 푸틴은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 중인 쿠릴 열도의 이투루프 섬을 전격 방문했다. 다카이치가 직접 나서 “북방 영토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의 고유 영토”라며 “(푸틴의) 이번 방문에 강하게 항의한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얼마 안 지난 9월4일 러시아 극동 하바롭스크에선 2차대전 대일 전승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소련군 병사가 과거 일본이 세운 국경 표지석을 소총으로 깨부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이 새겨진 표지석은 ‘대일본제국 경계’(大日本帝國 境界)라는 일곱 글자가 선명하다.
이번에도 다카이치가 나서 “일본 국민 감정과 관련된 문제”라며 “정부가 철거를 촉구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있다. 다카이치로선 푸틴에게 ‘2연타’를 제대로 얻어맞은 셈이니 ‘러시아를 혼내줘야지’ 하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게 당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