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폐공사가 은행권 제조장비 교체를 위해 해외업체와 100억원 규모의 장비계약을 체결했다가, 실제 성능이 절반 수준에 그친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5년 만에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설치, 시운전,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해 35억원에 이르는 손해가 발생했고, 노후화된 장비 교체 시기도 한참 늦어지게 됐다.
23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의원이 조폐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4월 조폐공사는 기존 노후장비 교체를 위해 스위스 은행권 제조장비 업체와 자동단재포장기 1식을 683만유로(당시 환율 기준 약 92억원)에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자동단재포장기는 인쇄된 은행권을 낱장으로 자르고 일정 수량 단위로 묶어 포장하는 데 사용하는 설비다.
계약 체결 이후 조폐공사는 해당 업체에게 선금·선적대금 등 2023년까지 총 532만4400유로를 지급했다. 그러나 설치 일정 조정 등을 이유로 계약기간이 두 차례 연장되면서 실제 장비의 성능을 시험하는 물품검사(SAT)는 2025년 4월에야 처음 진행됐다. 성능시험 결과, 해외업체에서 제작해온 장비 성능은 당초 조폐공사가 계약 시 제시했던 성능의 56% 수준에 그쳤다. 손율(불량률)도 계약 기준인 0.1% 이하보다 훨씬 높은 3.3%였다. 해당 업체는 1차 검사에서 불합격한 뒤 성능기준을 낮춰달라고 요청해 추가 시운전 기회를 줬지만, 2차 시험에서도 핵심 성능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