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찾은 독일 베를린 보데박물관 214호 전시실. 회녹색 벽과 나무 천장 아래 조각과 그림이 늘어선 긴 방에 예수의 대리석상이 놓여 있었다. 그 뒤편 벽 아래에는 벽과 같은 색을 칠한 낮은 상자가 있었고, 안에는 짙은 남색 쿠션이 준비됐다. 관람객은 언제든 쿠션을 꺼내 대리석 바닥에 깔고 앉아 명상할 수 있다. 안내판에는 ‘이 방은 여러분의 정서적 안녕을 위한 공간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부처상도 함께 놓은 이 전시실은 박물관이 베를린 자살예방센터와 함께 꾸린 ‘치유의 방’이다.
독일에서는 자살과 정신건강 문제를 박물관과 영화관 같은 문화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자살을 입에 올리기 쉬워져야 인식도 바뀐다는 생각에서다.
보데박물관은 2023년부터 지역 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이 공간을 운영해 왔다. 위기 청소년·청년을 상담하는 또래 상담단체 U25도 함께한다. 25세 이하 청년층의 자살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이 단체는 현재 독일 전역 14개 지역에서 약 360명의 또래 상담가와 함께 자살위기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U25의 청소년 상담가들은 평소에는 익명으로 접수되는 위기 청소년들의 메일을 받아 고민 상담을 이어가고, 정기적으로 박물관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자살 예방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보데박물관에서 10㎞ 떨어진 동베를린 리히텐베르크구에는 영화관 ‘시네모션 베를린 호엔쇤하우젠’이 있다. 이곳에서는 2010년부터 매년 자살,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건강 문제를 주제로 한 영화 상영프로그램 ‘너무나 인간적인(Irrsinnig Menschlich)’이 열린다. 구청과 지역 정신보건 네트워크, 당사자·가족 단체, 병원이 함께 꾸리는 프로그램이다. 상영이 끝나면 이들이 관객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정신건강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자는 취지다.
카트린 고크슈 리히텐베르크구 보건담당 구정의원은 “이 행사는 오랫동안 정신건강 문제를 공론화하고 정보와 대화의 장을 마련해 왔다”고 말했다. 라라는 “시민들이 자살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더 자주 접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자살이 특정 사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의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