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에 “합의냐 전멸이냐” 위협… 뒤에선 대면 협상

유엔 무대서 ‘화전양면술’

기조연설 “이란 파괴” 강경 발언
항공 제재 확대 등 고강도 압박도
이란 “전 세계적 침략 정당화” 반발
공방 속 양국 회담 3개월만 재개
전쟁 출구 전략 모색… 진전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무대에서 이란 전쟁 출구 전략 마련을 위한 ‘화전양면술’을 펴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단에 올라 다른 지도자들 앞에서 “이란을 파괴하겠다”며 강경한 단어를 쏟아냈지만, 뒤에서는 약 3개월 만에 대면 협상을 진행하면서 해법을 모색했다. 이란도 트럼프 대통령의 극언을 맞받아치면서도 협상은 이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의 대부분을 이란에 대한 비난과 전쟁 정당성을 설파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이란과 합의해 그들이 재건하고 훨씬 더 위대한 국가를 만들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신속히 전멸시켜 다시는 사람이나 국가를 해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인가”라고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면서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11월 중간선거 직후 이란과의 합의가 성사될 것이란 예상을 내놨다. “이란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국가가 우리와 함께 이란이 상선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핵 야망을 포기하며 테러 지원을 중단할 때까지 이란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적 고립에 함께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고 국제사회의 이란 제재 동참을 독려했다. “다른 이들이 말로만 평화를 이야기할 때 나는 평화를 이뤄냈다”며 이란 전쟁이 대표적인 미국의 국제문제 해결 사례라고도 했다.

 

트럼프 협박에 퇴장한 이란 대표단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총회 내 이란 대표단 좌석이 비어 있다. 이란 대표단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멸’이란 단어를 써 가며 이란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자 항의의 뜻으로 퇴장했다. 게티이미지 제공,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자 총회장에 있던 이란 대표단은 퇴장했다. 유엔 무대에서 한 국가의 ‘전멸’을 언급한 데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유엔 헌장의 ‘전쟁의 재앙으로부터 다음 세대를 구한다’는 구절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란군 총참모부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중앙사령부는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그의 말은) 사실관계에 근거하기보다 철저히 국내 선전용 도구에 불과하다”며 “미국은 유엔이라는 무대를 전 세계적인 침략과 불안정, 약탈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했다”고 비판했다. 이란 군부는 23일 총회 연설대에 오르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이란의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전 세계에 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아라그치 장관은 이날 미국 측 협상 대표단과 종전 및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위한 조건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티이미지 제공, AFP연합뉴스

미국은 이란에 고강도 ‘제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를 포함한 항공 봉쇄까지 시도하며 경제적 공세 강화에도 나섰다. 미국 정부는 23일부터 이란 항공 부문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고, 이란 항공사에 연료 보급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기업까지 대상에 추가하기로 했다. 미국이 해상 교역을 차단한 뒤 하늘길은 이란 무역의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미국의 위협에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출발해 이라크, 오만 등으로 향하는 모든 항공편의 운항이 취소됐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란 항공사의 자국 공항 이용을 금지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전날 CNBC 인터뷰에서 “이란 항공기가 내리면 연료와 착륙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항공권도 팔면 안 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달러 체계에서 퇴출당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양국은 공방을 쏟아내면서도 유엔총회 무대를 계기로 협상을 재개하는 모양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직후 양국 대표단이 회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이후 3개월 만이다. 미국 대표단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인 스티브 윗코프와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이란 측에서는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 시간 동안 이어진 회담이었다. 매우 생산적인 회담을 했으며,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추가 회담이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담에 대해 알자지라는 “회동에서는 분쟁 종식이나 이를 위한 협상을 재개할 수 있는 조건과 호르무즈해협 개방을 위한 전제 등이 논의됐다”며 “다만 이와 관련해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