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헌법적 근거가 없다”고 거부하며 청와대와 대법원의 ‘강대강’ 대치가 지속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장기화되는 국정 혼란과 사법 공백을 막기 위해 ‘출구 전략’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소모적 ‘재제청 요구’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일단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넘겨 국회 심의·의결을 거친 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임명거부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심판 등을 통해 헌법상 판단을 내리기까지 시일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명확한 헌법 절차를 거쳐 사태를 조속히 매듭짓는 것이 국정운영과 헌정질서 수호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23일 법원과 정치권에 따르면 대법원이 전날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대법관 인선 문제의 공은 다시 청와대로 넘어왔다.
헌법 104조 2항이 정한 대법관 임명 절차는 ‘대법원장 제청→국회 심의·의결→대통령 임명’ 세 단계다. 여기에, 대법원장이 후보 1명을 임명 제청하면 대통령이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한다는 세부 절차가 추가된 것이 현행 대법관 임명 절차다. ‘인사청문을 요하는 공직후보자에 대해서는 임명권자가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한다’는 인사청문회법 5조 2항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 및 임명동의안 제출 거부 시 후속 절차’에 대한 명문 규정이 헌법과 법률에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이 대통령이 거듭 재제청을 요구하는 방식 자체는 대통령의 재량적인 행위에 해당하므로 법률적·제도적 한계가 명확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조 대법원장 제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실체 없는 ‘재제청 요구’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국회 인사청문회와 의결을 거친 뒤 ‘임명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한 고법판사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은 국회를 거쳐 임명동의안이 본인에게 넘어왔을 때 비로소 생긴다고 봐야 한다”며 “바로 이때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장 제청 후 국회로 넘어가는 절차를 가로막고 대법원에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국회 심의·의결권 행사 침해라고 볼 소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을 국회로 넘기는 것이 조속한 사태 수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 사태의 결론이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으로 판가름나게 될 경우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수개월 이상 대법관 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임명거부권을 행사해 제청안을 공식적으로 철회·무효화한다면, 대법원은 비로소 법적 명분을 갖고 후속 절차에 착수할 수 있다.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를 다시 꾸려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법원장의 새 후보 제청, 국회 동의, 대통령 임명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헌법 절차를 다시 밟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만약 국회가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쳐 손봉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동의하기로 결정했다면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헌법적 지위는 국민의 규범적 대표라고 해석해야 한다”며 “따라서 국민의 의사로 구성된 국회가 대법관 임명에 동의했다면, 이는 국민의 대표로서 자격이 부여된 것이므로 임명권자는 반드시 임명해야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