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같은 며느리는 말이 안 된다.”
방송인 이경실이 22일 유튜브 콘텐츠 ‘신여성’에서 “며느리가 싫어서가 아니라 시어머니 입장에서 조심하게 된다”며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딸과는 싸우고 나서도 ‘엄마랑 그만해’처럼 가벼운 한마디면 다시 옛날처럼 돌아오는데 며느리와는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 것 같다”며 며느리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경실의 고백처럼 오늘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과도기를 거치며 ‘선’을 지키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다.
◆ 14년 지나도 여전히…불편·스트레스 느낀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가사 노동 요구와 명절 스트레스, 시댁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 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2020년 성인 3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혼 여성의 명절 스트레스 체감률은 70.9%로 기혼 남성(53.6%)을 크게 웃돌았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용돈·선물 등 많은 지출’과 ‘힘든 제사 음식 준비’, ‘불편한 시댁 식구’ 등이 차례로 꼽혔다.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도 기혼 여성의 경우 ‘시부모 등 시댁 식구(68.4%)’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기혼 남성은 ‘배우자(29.2%)’와 ‘부모(27.6%)’ 등을 꼽아 뚜렷한 온도 차를 보였다.
과거에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2012년 듀오라이프컨설팅이 전국 기혼 여성 4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58.1%)이 “시댁 방문이 어렵고 불편하다”고 답했다. 시댁 방문을 불편하게 하는 식구로는 시어머니가 41.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시누이(21.2%)가 뒤를 이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며느리에게 시댁은 여전히 긴장과 갈등의 공간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 딸 같은 며느리…친딸처럼 행동했다간 ‘당혹감’
시어머니들이 먼저 딸 같은 며느리를 바라거나, 며느리가 이를 자처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7년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한 출연자는 “딸 같은 며느리가 존재한다”며 “그래서 며느리를 죽어라 따라다니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른 출연자도 “며느리를 딸처럼 만들어야 된다”고 거들었다. 이에 게스트 박명수는 “딸 같은 며느리는 본 적이 없고 그렇게 만들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친딸처럼 행동했다가 관계가 삐걱거린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5월 JTBC ‘사건반장’에는 “딸 같은 며느리가 되겠다”고 자처했던 며느리 때문에 난감해진 50대 시어머니의 사연이 전해졌다. 사연에 따르면 며느리는 시댁 냉장고를 마음대로 열어 음식을 꺼내 먹고 반찬 투정을 일삼았으며, 주말마다 시댁 소파에 누워 TV만 보는 등 실제 딸의 모습처럼 행동했다.
사연자는 결혼 전 며느리의 싹싹하고 애교 많은 모습, 결혼 후 자연스럽게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에 딸이 생긴 듯 반가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이 쌓였고 결국 “관계가 틀어질까 봐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속앓이를 고백했다.
전문가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경계를 허무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4월 배우 한고은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공동체는 될 수 있지만 가족은 아니다”라며 “가족은 자칫 잘못하면 서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너무 쉽게 넘거나 들어오면 안 되는 선을 들어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딸 같은 며느리는 회사 사장이 직원에게 ‘네 회사라고 생각해’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 조심스러워진 관계…결국 답은 ‘상호 존중의 거리’
최근에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경실의 사례처럼 며느리를 조심스러워하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시어머니도 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가족 부양이나 명절 문화 등을 둘러싼 인식 구조의 변화가 자리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노부모의 주 간병인은 2011년 ‘배우자-며느리-아들-딸’ 순에서 2020년 ‘배우자-딸-아들-며느리’ 순으로 바뀌었다. 10년 새 며느리의 부담이 4위로 밀려나고 자녀가 주도적으로 부양을 맡는 등, 더는 며느리가 도맡지 않는 시대가 된 셈이다.
명절을 누구와 함께 보내느냐에 있어서도 인식이 달라졌다. 여성가족부(현 성평등가족부)의 ‘2023년 가족실태조사 분석 연구’에 따르면 ‘부부가 각자의 가족과 명절을 보내는 것’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35.1%로 2020년(29.9%)과 비교해 5.2%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여성(38.3%)의 동의율이 남성(31.8%)보다 높았으며 20대에서는 절반에 육박하는 49.1%가 동의했다.
이처럼 ‘시댁 우선’이라는 전통적 관성이 힘을 잃으면서 며느리를 대하는 시어머니의 태도도 점차 변화를 겪어왔고, 자연스럽게 ‘적절한 거리’를 택하게 됐다. 거리두기가 관계의 단절이 아닌, 건강한 공존을 위한 방법으로 선택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