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 될 상인가. 아니, 이곳이 왕이 나올 터인가?”
세종에 다시 내려온(BACK) 뒤 처음 맞는 추석인 만큼, 이번 명절은 본가로 올라가는 대신 부모님이 세종으로 내려와 함께 보내기로 했다. 이직 후 첫 명절이다 보니 예상대로 부모님의 ‘명절용 질문’이 쏟아졌다.
“결혼은 언제….”
“새 직장에서는….”
웃으며 여러 질문에 답하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다시 자리 잡은 세종에서 앞으로 잘 풀릴까. 그런데 직업병이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며 세종을 바라보자 공공기관 이전이 생각났고, 대통령실 세종집무실 건립 추진이 겹쳤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앞으로 이곳으로 내려올 사람들은 잘 풀릴 것인지, 그렇다면 그들이 살아갈 세종은 얼마나 크게 성장할 도시인지로 생각이 뻗어나갔다.
과연 세종은 그만한 좋은 기운을 품은 땅일까. 대한민국의 행정수도를 꿈꾸는 세종은 정말 ‘왕이 나올 터’가 될 만한 곳일까. 과연 명절다운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상상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시작된 생각은 어느새 ‘세종의 풍수’까지 흘러왔다.
“배산임수에 금강까지… 기본기는 갖췄다”
풍수를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 있다. 바로 배산임수(背山臨水).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형상이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에서 유래했다. 예로부터 산이 둘러싸 바람을 막아주고 앞에는 물이 흘러 쉽게 생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을 명당으로 쳤다. 특히 겨울철 차가운 북서풍을 산이 막아주고 남쪽으로 햇볕이 잘 드는 지형은 실제 사람이 살아가기에도 유리했다.
그래서 추석을 앞두고 세종의 지세를 둘러봤다. 다행히 세종도 이 풍수의 기본기는 갖추고 있었다. 다들 잘 알다시피 행복도시 남쪽으로 금강이 흐른다. 금강은 전북 장수군 신무산에서 발원해 충청권을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하천이다. 세종에 이르러 미호강과 만나고, 다시 공주와 부여를 거쳐 서해로 빠져나간다. 특히 세종에는 금강과 미호강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물줄기가 만나는 ‘합강’도 품고 있다.
“산은 산이로되 낮고, 세종호수공원으론 부족하고”
문제는 산이다. 행복도시 북쪽을 지키는 주산(主山)으로는 원수산과 전월산이 있고, 그 앞으로는 넓은 장남평야가 펼쳐져 있다. 그런데 원수산은 해발 약 251m, 전월산은 약 260m 남짓에 불과하다. 주말에 마음먹고 나서면 한두 시간이면 산 하나씩 ‘도장 깨기’가 가능할 정도다. 산이라기보다는 세종시를 아늑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동산에 가깝다.
서울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서울에는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 도시를 든든하게 감싸 안는 명산들이 버티고 있다. 반면 세종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산과 구릉이 펼쳐진다. 풍수에서 중요하게 보는 ‘장풍’, 즉 산이 도시를 감싸 바람을 갈무리하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이다.
산이 약하지만 물이 좋으니 괜찮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풍수에서는 금강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외당수)와 함께, 명당 안쪽을 감싸고 흐르는 작은 물길(내당수)도 중요하게 본다. 서울로 치면 한강은 물론 도심 안쪽을 흐르는 청계천 같은 물줄기다. 세종은 도시 아래쪽으로 금강이 넉넉하게 받쳐주고 있긴 하지만, 풍수학자들은 바로 이 ‘내당수’의 부재를 아쉬운 대목으로 꼽는다.
“100점짜리 풍수는 없다… 부족하면 채우면 된다”
이번에 세종의 풍수를 제대로 파고들려 논문부터 관련 서적, 칼럼까지 십여 편의 자료를 찾아 읽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같이 세종의 풍수적 단점을 꼬집고 있었다. 산세의 기운이 약하다는 지적부터 원수산과 전월산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두 산 사이가 깊게 함몰되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계속 읽다 보니 ‘세종이 정말 수도로서 좋은 땅이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풍수에는 ‘형국불가완(形局不可完)’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완벽한 풍수는 없으니, 부족한 부분은 사람이 보완하면 된다는 뜻이다. 세종시 한복판에 거대한 세종호수공원이 들어선 것도 따지고 보면 내당수의 허전함을 메우기 위한 지혜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세종은 과연 ‘왕이 날 터’인가? 적어도 아직 답이 고정된 땅은 아니다. 세종이라는 도시 자체가 애초부터 완성형이었던 적은 없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방향을 틀었고, 정부 부처가 하나둘 내려오며 지금의 골격을 갖췄다. 행정수도 완성을 향한 길은 현재 진행형이다. 결국 이 도시가 어떤 ‘왕의 상’을 갖추게 될지는, 앞으로 이곳을 어떻게 채워 가느냐에 달렸다.
그러고 보니 다시 세종으로 내려온 내 삶의 궤적도 비슷하지 않을까. 터도, 사람도 결국 어떻게 채워가느냐에 따라 완성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100투더세종…10편/투 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