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분기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의 처방·조제를 추진하기로 한 가운데, 도입의 법적 근거가 된 법제처 유권해석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임신중지 절차 관련 입법 공백은 그대로 둔 채 의약품 허가부터 추진하면 의료현장에서 처방·조제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내년 1분기부터 미프진의 원내 처방 및 조제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7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 뒤 최근 발표된 내용으로 임신 9주 이내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속도가 나지 않던 미프진 도입이 탄력을 받은 건 지난달 법제처의 유권해석 덕이다. 지난달 19일 법제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미프진의 수입품목을 허가할 수 있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놨다.
그런데 이 유권해석에는 ‘모자보건법 제14조가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신중지 약물에 대해 수입품목허가를 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으나, 임신중단의 허용 주수·사유·절차 등 그 규율체계를 입법적으로 명확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별론으로 하고,’라고 적혀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임신중절의 수단으로 수술만 규정하고 있다. 법제처는 이 같은 조항을 별론으로 한다고 했다. 정부가 형법·모자보건법이 개정되지 않았는데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절차를 진행하기로 한 이유다.
유권해석에 따르면 약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형법상 처벌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초기 2년간 원내조제만 허용하기로 했다.
연취현 법률사무소 와이 대표 변호사는 법제처의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연 변호사는 “국회에서 법 만드는 게 부담스러우니 이를 피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법제처가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입법 공백이 명확한데 ‘별론으로 한다’는 게 어떻게 유권해석이냐”고 반문했다.
전 정부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 지시 한 번에 급하게 추진되는 듯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식약처가 허가한다고 쳐도 입법 공백은 여전한 것”이라며 “법제처 유권해석은 도저히 유권해석으로 보기 어렵고, 곡학아세(曲學阿世)로 보인다”고 했다.
의료계는 조속히 입법이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22대 국회에서 형법 개정까지 포함해 발의된 관련 법안은 임신 10주 이내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안 1건뿐이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명예회장은 “법제처가 유권해석을 그렇게 했다고 해서, 법에 명문화된 것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의사 1000여명이 모인 텔레그램 방에서는 지금 법상에서 미프진이 도입됐을 때 잘못되면 결국 의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것 아닌지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이어 “미프진을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법 개정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