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마두로 체포=범죄”라는데… 베네수 임시 대통령 “트럼프에 감사”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의 협력” 외쳐
미군에 체포된 마두로에 관해선 언급 생략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국가원수 자격으로 처음 행한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 행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작 유엔이 ‘반(反)인도적 범죄’로 규정한 미군의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 체포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부통령 겸 석유부 장관을 맡고 있던 로드리게스는 올해 1월3일 마두로가 대통령 관저에서 미군 특수부대에 붙잡혀 미국 뉴욕으로 압송된 뒤 현재까지 임시 대통령을 맡고 있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올해 1월3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미군 특수부대에 체포돼 미국으로 압송된 이후 현재까지 임시 대통령을 맡고 있다.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로드리게스는 이날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임시’ 대통령이라는 한계 탓에 외교 행사 참여를 자제해 온 로드리게스가 유엔 무대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드리게스는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축출 후) 부흥을 위한 민주적 전환을 시작했다”며 “이는 ‘모두에게 더 자유롭고, 더 번영하며, 더 평화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질서 있는 제도적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 제도 개혁과 야당 차별 중단 등을 공언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외교 관계 개선 그리고 협력 재개의 길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로드리게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베네수엘라·미국)는 대화를 통해 엄숙하게 우리의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미국과 협력해야 할 분야로 에너지 등 경제, 안보, 국경을 넘는 마약 등 범죄와의 싸움을 꼽았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왼쪽)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따로 만나 회담하기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튿날 총회 연설에서 로드리게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행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전날 유엔에서 마두로 축출 이후 처음으로 로드리게스와 만나 회담했다. 다만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로드리게스는 연설 내내 전임자이자 상사였던 마두로에 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벤 사울 유엔 대(對)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이 최근 제출한 보고서에서 마두로 체포 작전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한 점을 감안하면 다소 뜻밖이다. 로드리게스는 사건 발생 직후만 해도 미국을 강력히 규탄했으나, 트럼프 측과 접촉한 뒤 입을 닫고 되레 적극적인 친미(親美) 행보에 돌입했다.

 

베네수엘라 앞에는 정식 대통령 선거를 치러 새 지도자를 뽑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정부를 출범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날 유엔 연설에서 로드리게스는 대선 실시를 약속하며 “정부가 모든 정치 세력에게 동등한 조건을 보장하기 위해 야당 일부와도 협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만 대선을 언제 치를지 날짜 등 구체적 일정은 함구했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2025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를 대선에 단일 후보로 내보낼 뜻을 밝힌 상태다. 마차도 역시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로드리게스에게 조기 대선 실시를 촉구했다. 다만 마두로 정권 때 반정부 인사로 찍힌 마차도는 아직 해외에 머물며 베네수엘라로 입국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