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너 살 좀 빼야겠다∼”
추석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들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안부를 묻는가 싶더니 어느새 취업과 결혼, 외모까지 참견하기 시작한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반갑지 않은 잔소리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명절에 어떤 잔소리를 가장 듣기 싫어할까.
지난 1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만난 초등학생 김지우(9)군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숙제해”였다.
중학생 박시현(15)군은 의대에 다니는 사촌 형과 자신을 비교하는 말이 가장 싫다. 박군은 “나도 내가 되고 싶은 꿈이 있는데 계속 형이랑 비교한다”며 “나한테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숙제와 성적이 있다면 청년들에게는 취업과 결혼이 있다.
취업준비생 조정훈씨는 “취업은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가장 부담스러운 잔소리로 꼽았다. 이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도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다.
30대 직장인 A씨에게는 늘 결혼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남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는 그는 나름의 대처법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지금 결혼하면 사주가 안 좋다고 한다”는 말로 상황을 넘긴다.
잔소리를 피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어른들의 말에 “네네∼” 하고 적당히 맞장구치며 넘기거나 아예 잔소리를 들을 만한 친척 모임에 가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웃어넘기기 어려울 만큼 심한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단순한 참견을 넘어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표현으로 이어질 경우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을까.
오경수 법무법인 세웅 대표변호사는 “명절에 만난 친척들이 하는 각종 잔소리는 대부분 상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오 변호사는 “예를 들어 상속 문제로 가족 간 감정싸움이 벌어진 경우 상대를 공격할 목적으로 ‘네 아들 아직 실업자라며, 사람 구실이나 하겠냐’는 식으로 말했다면 명예훼손 또는 모욕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모욕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연성’의 요건도 따져봐야 한다.
오 변호사는 “단순히 몇 명이 들었는지보다 그 말이 불특정 또는 다수에게 퍼질 가능성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단 한 명에게 한 말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객관적으로 확인된다면 공연성이 인정될 수 있다.
물론 명절 밥상에서 오가는 잔소리 대부분이 법정까지 갈 일은 아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남은 불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추석에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에게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라는 질문 대신 “요즘 어떻게 지내니”, “고생이 많았지”라는 안부를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그 한마디가 어떤 명절 선물보다 반가울지 모른다.
세대별로 다른 명절 잔소리와 시민들의 재치 있는 대처법, 잔소리가 모욕죄로 이어질 수 있는 법적 경계에 대한 내용은 세계일보 유튜브 <29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