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톨릭에 첫 ‘복자’ 탄생…레오 14세 배출 이은 겹경사 [이 사람@World]

‘TV 전도사’로 명성 떨친 풀턴 신 대주교
최근 로마 교황청에 의해 ‘복자’로 시복
뛰어난 방송 능력으로 ‘안방 극장’ 공략
주간 시청률 1위 기록에 에미상 수상도

‘최초의 텔레비전(TV) 전도사’로 불리며 20세기 미국 가톨릭 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풀턴 신(1895∼1979) 대주교가 미국 출신 주교로는 처음 복자(福者) 반열에 올랐다. 로마 교황청은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가톨릭 사제에게 교황의 승인을 얻어 가경자(可敬者), 복자, 성인(聖人) 등 호칭을 수여한다.

 

24일(현지시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아메리카 센터 돔’에서 뉴욕 대교구 보좌주교, 로체스터 교구장 등을 지낸 풀턴 신 대주교의 시복식이 거행되고 있다. 미국 출신 주교가 가톨릭의 복자 반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P연합뉴스

마침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 치세에서 실현된 시복(諡福)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풀턴 신 대주교 시복에 대한 대통령 메시지’를 발표했다. 트럼프는 “오늘(24일) 신 대주교는 가톨릭 교회에서 복자품에 오른 최초의 미국 출신 주교가 된다”며 “신 대주교의 삶과 유산을 기념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한다”고 밝혔다.

 

신은 19세기 말 미 중서부 일리노이주(州)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지능과 유쾌한 성격, 그리고 뛰어난 웅변 능력으로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둘 다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신도 일찌감치 세례를 받으며 가톨릭 신앙에 눈을 떴다.

 

청소년 시절 마을 성당에서 주일 미사 준비를 돕던 그가 그만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신부는 당황한 신을 나무라는 대신 “괜찮다”며 “나도 어릴 때 실수가 많았는데, 너도 나처럼 신부가 되겠구나”라고 다독였다. 이에 감동한 신은 장차 신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신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일리노이주 피오리아 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됐다.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벨기에, 이탈리아 등지에서 가톨릭 교리와 철학을 더욱 깊이있게 공부했다. 그는 1930년대부터 학생들 교육과 대중 강연에 매진했는데 특히 라디오를 사목 활동에 적극 사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TV가 널리 보급되면서부터는 직접 TV에 출연해 가톨릭 신앙을 전파했다.

 

미국 가톨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제들 중 한 명인 풀턴 신(1895∼1979) 대주교.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등 사목 활동에 TV를 적극 활용해 ‘최초의 TV 전도사’로 불렸다. 풀턴 신 박물관 홈페이지

1951년 주교가 된 신은 뉴욕 대교구 보좌주교를 맡았고, 이듬해인 1952년 TV 프로그램 ‘인생은 살아 볼 만합니다’(Life is Worth Living)를 진행했다. 이는 가톨릭 신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큰 감명을 선사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인기 가수나 배우가 등장하는 각종 쇼, 드라마 등을 제치고 주간 시청률 1위에 오르는 기록도 세웠다. 덕분에 가톨릭 신부로는 드물게 방송계의 권위있는 에미상을 받고 시사 주간지 ‘타임’ 표지에 얼굴이 실렸다.

 

젊은 시절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나치즘을 강하게 규탄한 신은 1950년대 들어선 공산주의 비판에 열을 올렸다. 트럼프는 바로 이 점을 거론하며 “신 대주교는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위협에 직면한 세상에 기독교의 가르침을 대담하게 전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1966년 신은 뉴욕주 로체스터 교구장이 되었고, 3년 뒤인 1969년에는 대주교로 올라섰다.

 

1979년 10월 미국을 방문한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신을 포옹하며 “말과 글로 주님을 정확히 알린 당신은 교회의 충성스러운 아들”이란 찬사를 바쳤다. 그로부터 2개월 만에 신은 개인 예배당에서 기도하던 중 쓰러져 별세했다. 향년 8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