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샤유팅 카페/안기종/엔자임/2만3000원
“환자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꾼다.”
의료현장에서 환자는 가장 약한 위치에 놓인다. 몸은 아프고, 치료 과정은 낯설며, 의료진과 제도에 대한 정보도 충분하지 않다. 의료사고나 부당한 대우를 겪더라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입증하기조차 쉽지 않다. 이때 환자와 가족이 자신의 고통과 울분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단순한 하소연을 넘어 의료제도를 움직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환자 샤우팅 카페’ 는 바로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 안기종은 2012년부터 이어져 온 ‘환자샤우팅카페’를 중심으로 환자와 가족의 증언이 사회적 공론으로 확산되고, 법과 제도의 변화로 연결된 과정을 담았다.
환자샤우팅카페는 ‘Shouting(외침)’, ‘Healing(치유)’, ‘Solution(해결)’의 의미를 담은 보건의료 소통 플랫폼이다. 환자가 무대에 올라 자신의 경험과 피해를 이야기하면 전문가와 청중이 함께 듣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2012년 6월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항암제 투약 오류로 아들을 잃은 정종현군 어머니의 증언으로 시작됐다. 이후 2025년 8월까지 26차례에 걸쳐 약 60명의 환자와 가족이 무대에 올랐다.
책은 이 가운데 실제 법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9개 사례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항암제 투약 오류로 아들을 잃은 가족의 호소는 「환자안전법」 제정으로 이어졌고, 이른바 ‘종현이법’이 탄생했다. 의료사고로 또 다른 아이를 잃은 가족의 외침은 환자안전법을 보완하는 ‘재윤이법’으로 연결됐다.
환자의 목소리가 바꾼 것은 환자안전 제도만이 아니다. 선택진료제 폐지, 퇴원약의 실손보험 보장, 중증질환 산정특례 제도 개선, 폐암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진료 거부 문제, 응급의료 제도 개선 등 환자들이 일상에서 부딪힌 다양한 문제들이 책에 담겼다.
특히 책은 환자의 절규가 제도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환자의 증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전문가의 해법이 더해지며, 환자단체의 입법 활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개인의 피해가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의료환경을 바꾸는 힘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저자 자신도 환자운동의 현장에서 출발했다. 백혈병 환자인 아내의 보호자인 그는 아내의 투병을 계기로 환자들이 겪는 의료제도의 한계를 체감했다. 2005년 환자단체 활동을 시작하면서 8년 동안 준비해온 사법시험 공부를 그만뒀고, 2010년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창립을 주도했다. 이후 20여 년간 환자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책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지만 묵직하다. 환자는 병원에서 단순히 치료받는 대상에 머물러야 하는가. 환자의 경험과 목소리는 의료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반영되고 있는가.
저자는 환자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고 말한다. 낯설고 불안한 병원에서 자신의 말이 무시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환자 중심의 의료란 환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한다.
2027년 4월 ‘환자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책의 의미가 크다. 지난 14년간 환자들이 외친 목소리가 어떻게 법과 제도를 변화시켰는지 되짚어보는 것은 앞으로의 환자권리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는 일이기도 하다.
‘환자 샤우팅 카페’ 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환자권리운동의 역사다. 무엇보다 “우리의 이야기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환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책은 결국 의료의 주인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의료가 더 안전하고 인간적인 의료의 출발점이라는 메시지다.
저자는 “이 책은 샤우팅한 9명의 환자와 가족만의 기록이 아니라, 그 목소리가 법과 제도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끝까지 붙잡았던 환자단체 활동가들의 기록이기도 하다”며 “우리의 이야기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저자는 대한민국 1세대 환자 활동가다. 백혈병 환자인 아내의 보호자이자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환자이기도 한 그는, 2001년 아내의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계기로 8년간 준비하던 사법시험을 그만두고 2005년부터 환자단체 활동가의 길을 걸었다. 2010년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현재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와 한국백혈병혈액암환우회 공동대표를 맡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정부의 주요 법정위원회에서 환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