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청권은 대법원장 몫”이라더니…이젠 “임명권은 도장만 찍으라는 거냐” [장혜진의 법조 랩소디]

“헌법을 짓뭉개는 것은 이제 상습적입니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법관의 제청, 동의, 임명의 주체를 구별하고 그 중 제청권은 대법원장의 몫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 2023년 6월5일 제115차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헌법 조문은 그대로인데, 헌법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기준은 180도 달라졌다. 야당 시절에는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 추천·제청 과정에 개입하는 것을 두고 “대법원장의 제청권 침해”라며 비판하더니, 여당이 된 지금은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대법원장을 향해 “대통령의 임명권은 도장만 찍으라는 것이냐”며 탄핵과 특검까지 거론한다.

서영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헌법 파괴·사법농단 조희대 대법원장 항의 방문하고 있다. 뉴시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국회에 동의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각각 부여한 조항이다.

 

고민정 의원은 2023년 6월 5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조항을 근거로 윤석열 대통령의 대법관 인선 개입을 비판했다. 청와대가 대법관 후보로 추천된 일부 후보자에 대해 제청 시 임명 거부를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에 대한 반응이었다. 당시는 현재와 같이 청와대가 특정 인사를 지목해 대법원장에게 제청을 요구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 의원은 대통령이 대법관 제청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았다. 민주당 대표이던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였다.

 

같은당 김한규 의원은 지난달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에게 “(대통령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 등의 이유로 ‘이 사람이 좋겠다’고 했을 때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요청을) 받으면 안 되는 일이냐”고 따져물었다.  

 

불과 3년 전 원내대변인 시절 “‘삼권분립’이 없으면 ‘자유민주주의’도 없다”고 외쳤던 그였다. 김 의원은 2023년 6월20일 민주당 공식 서면브리핑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이 보장한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권까지 무시했다”며 “이는 사법부 독립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검사정권의 오만한 폭주이자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또다른 원내대변인 홍성국도 같은해 6월 5일 ‘삼권분립을 부정하는 대통령실, 헌법이 가소로워 보입니까?’라는 서면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이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대법관까지 모두 뽑을 생각이냐”면서 규탄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서영교 국회 법사위원장 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 관련 항의 방문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역대 정부의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과 청와대간 사전 조율과 합의로 임명했다. 관습법도 법”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박 의원의 주장은 2023년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했던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당시 박 의원은 “제가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라며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 대통령이 특정 인사를 요구하거나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반헌법적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는 앞서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와 대법관 후보자 제청에 대한 사전 협의를 하지 않는 등 ‘절차적 흠결’이 있다면서 재제청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기존 대법관 후보추천위가 추천한 4명 중 한명을 다시 제청하라고 못 박았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1순위로 고려한 것으로 알려진 김민기 고법판사를 제청하라는 요구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조 대법원장은 장고 끝에 22일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공문에 대해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고, 달리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민주당 이주희 원내대변인은 “본인의 제청권만 존중받아야 하고, 대통령의 임명권은 도장만 찍어야 한다는 것이냐”고 쏘아붙였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이미 진압된 내란 세력의 마지막 외톨이의 돌출 행동”이라며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특검 가능성을 언급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내란”, “사법 쿠데타”라며 대법원을 찾아가 항의했다. 

 

우리 헌법은 “권력 분립의 원칙에 따라 대법관의 제청, 동의, 임명의 주체가 구별”(고민정)된다. 특정인에 대한 제청이 아니면 협의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절차적 흠결’을 들어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과거 민주당이 비판했던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권에 대한 개입”과 무엇이 다른가.

 

대통령은 정녕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대법관까지 모두 뽑을 생각인가”(홍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