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있지만, 반도체에 집중된 호황이 물가를 자극하며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급등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오른 데 이어, 반도체 업계의 성과급 지급이 전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6일 국가데이터처의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영향을 받는 IT기기의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컴퓨터의 경우 전년 대비 23.7% 치솟았고, 태블릿을 포함하는 휴대용멀티미디어기기는 22.5%, 저장장치는 46.8% 급등했다. 중동전쟁의 여파로 8월 석유류 가격의 상승폭이 14.2%를 기록했는데, 컴퓨터나 휴대용멀티미디어기기의 상승폭이 더 컸던 셈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올해 1∼2월 1.5% 수준에 머물렀지만, 3~7월에는 2.3%, 8월 들어서는 4.3%까지 뛰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며 가격이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의 7월 생산자물가동향에 따르면 D램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474.4%, 플래시메모리 가격은 248.1% 치솟았다.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상승은 소비재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 듀오’는 256GB 기준 출시가격이 한국 시장에서 329만원으로 책정됐다. 함께 출시된 ‘아이폰 18 프로’는 256GB 기준 199만원으로 전작 대비 20만원 올랐다. 삼성전자가 출시한 갤럭시 폴드8의 국내 출시가격도 256GB 기준 227만원에 이른다. 시장분석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전세계 스마트폰 가격이 평균 15% 상승했고, 신규 출시가는 25% 급등한 것으로 분석했다.
IT기기의 가격 상승은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휴대전화는 물가 지표에서 차지하는 가중치가 높은 편에 속한다. 소비자물가지수는 458개의 품목에 각각의 가중치를 부여해 산출한다. 가중치의 총합은 1000으로, 이중 휴대전화의 가중치는 10.4에 이른다. 태블릿(1.2)이나 컴퓨터(3.0), 저장장치(0.1)보다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큰 셈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호황이 주요 반도체 기업의 실적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제품의 가격 역시 가파르게 치솟은 것이다. 더 나아가 반도체 기업의 나홀로 성장이 임금 격차를 유발하는 동시에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최근 내놓은 ‘2026년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기업의 이익이 시차를 두고 임금과 소비, 주택 구매로 확산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기업의 성과급 지급과 사내 대출 확대 기대 등이 맞물려 경기 화성과 용인, 수원 등지의 ‘반도체 벨트’에서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2016∼2017년 반도체 수출 확장기에도 IT업종의 임금이 상당폭 높아지며 약 3개월 정도의 시차를 두고 서비스 임금으로 파급됐다”며 “이에 영향을 받아 서비스 물가 오름세가 확대된 바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3.1% 상승했다. 8월 물가가 3%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8월 SK텔레콤의 통신비 인하에 따른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지만, 이를 제외한 물가상승률은 2.5% 수준으로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치(2.0%)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소비자가 자주 구매하는 품목을 중심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3.2% 올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3.4% 상승하며 3년3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