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현대화·대중화라는 난제를 풀어나가고 있는 전국 국악관현악단이 한자리에 모인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이한 이번 축제에선 그간 쌓아온 국악관현악 고유의 음악적 깊이는 물론 동아시아 전통악기가 국악관현악과 만나며 그 영역이 한층 넓어진다. 초연과 위촉작 무대도 풍성하다.
‘2026 대한민국국악관현악축제’는 10월 6일부터 1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다. KBS국악관현악단을 시작으로 평택·안산·진주·성남시립국악단, 강원특별자치도립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천안시충남국악관현악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중앙국악관현악단까지 11개 단체가 참여한다.
국악관현악의 역사는 1965년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창단에서 시작해 60년을 넘겼다. 축제 추진위원장인 작곡가 박범훈은 지난 15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처음엔 민요나 전통음악을 합주로 연주하면서 시작했고, 관현악의 형식을 갖춰가면서 악기도 개량되고 다양한 창작이 이뤄졌다”며 “어떻게 우리 음악이면서도 새롭게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낼 것인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너무 새롭게 하면 정체성이 없어지고, 정체성만 살리다 보면 옛날 전통음악이 된다”고 말했다.
국악관현악 축제의 가장 큰 의미는 당대 활동하는 국악 작곡가들의 작품과 악단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평론가인 이소영 축제 추진위원은 “국악이라는 말 때문에 오래된 전통음악을 할 것 같지만 국악관현악은 가장 컨템퍼러리한 음악을 한다”며 “모든 곡이 지금 창작된 작품으로 이뤄지는 축제”라고 설명했다.
올해 가장 눈길을 끄는 무대는 10월 7일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 공연이다. ‘아시아의 원류와 흐름’을 주제로 일본 지휘자 이나다 야스시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나다는 일본 전통악기 합주단인 일본음악집단의 지휘자로 빈 국립음대에서 유학했다.
일본 작곡가 나가사와 가쓰토시의 관현악 ‘히나우타’(이용탁 편곡)로 문을 열고, 일본 비파 연주자 이시다 사에가 비파 협주곡 ‘기원정사’를, 몽골국립예술문화대 교수인 푸레브쿠 테무진이 마두금 협주곡 ‘원’을 협연한다. 애니메이션 ‘나루토’ 등 300여 편의 작품에 참여한 샤쿠하치 연주자 모토나가 히로무는 박범훈이 쓴 샤쿠하치 협주곡 ‘류’를, 마카오 중악단 소나 수석 궈솽시는 소나 협주곡 ‘황토정’(이동훈 편곡)을 들려준다.
진성수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는 “몽골·중국·일본의 작곡가와 협연자, 지휘자가 한데 어울려 과연 어떤 소리를 만들어내는지가 관객에게 드리고 싶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진주시립국악관현악단 공연(10월 9일)에선 원영석 객원지휘로 이준기의 ‘신목제’, 이정호의 대금협주곡 ‘환상적’, 이지영의 해금협주곡 ‘레이크 루이스’ 중 ‘백야2’ 등 2026년 초연작 세 곡을 처음 공개한다. ‘신목제’를 쓴 이준기와 이 곡을 지휘하는 소서현은 20대다. 대한민국 국·공립예술단 국악지휘자협회가 올해 시작한 신진 작곡가·지휘자 육성 사업 ‘K뉴웨이브 국악창작프로젝트’에 선정됐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10월 17일)은 작곡가 이일우가 비트박스와 국악관현악을 위해 쓴 신작을 비트박서 빅맨과 축제 폐막 무대에서 초연한다. 지난 4월 정기공연 ‘믹스드 오케스트라 26’에서 처음 비트박스 협연을 선보인 데 이어 새 곡을 마련했다. 이승훤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은 “비트박스가 국악관현악과 어울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악단도 걱정이 있었다”면서 “비트박스도 결국 사람의 몸으로 내는 자연의 소리다. 막상 해보니 굉장히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그는 창작곡이 발표되자마자 ‘초연이 곧 종연’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해 상주작곡가 제도를 운영하고, 초연한 곡을 다시 무대에 올려 레퍼토리로 쌓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공연(10월 15일)에선 위촉곡이 여럿 연주된다. 이고운의 피리 이중협주곡 ‘문’과 판소리 ‘적벽가’를 교향시로 확장한 이지영의 ‘적벽 그 너머에’(판소리 채수정·이치현·지명인), 2025년 위촉곡인 손다혜의 ‘수심을 넘어’와 김성국의 25현 가야금 협주곡 ‘푸른 신의 춤’ 등 이 위촉작 네곡이 연주된다. 나머지 한 곡은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이 협연하는 ‘노들강변/메나리토리’다. 성남시립국악단(10월 13일)도 2025년 위촉곡인 이정호의 ‘얼음속의 꽃’을 다시 연주한다.
같은 곡을 다른 악기로 비교해 듣는 재미도 있다. 강상구의 ‘푸른 달’은 성남시립국악단 무대에서 해금 연주자 노은아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무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가 협연한다. 지난해 KBS국악관현악단 무대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연주된 데 이어 2년 연속 축제에 오르는 곡이다.
개막 무대에선 KBS국악관현악단(지휘 박상후)이 첼리스트 김솔 다니엘과 최지혜의 첼로 콘체르토 ‘미소’를,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과 도널드 워맥의 9현 거문고 협주곡 ‘검은 용’을 협연한다. 지난 정기연주회에서 위촉 초연한 김대성의 ‘꿈하늘’도 새롭게 다듬어 선보인다.
10월 10일 특별공연에 나서는 중앙국악관현악단(지휘 김성국)은 박 추진위원장이 작곡한 마당놀이 ‘춘향전·심청전’을 국립창극단 이광복·이소연·조유아와 함께 무대에 올린다. 이 밖에 안산시립국악단(10월 8일)은 지브리 영화음악과 가요를, 강원특별자치도립국악관현악단(10월 11일)은 첼로·마림바·설장구 협주곡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10월 14일)은 동해안 무속 장단을 담은 ‘초망자굿’을, 천안시충남국악관현악단(10월 16일)은 해금협주곡 ‘산곡’ 등을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