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일 정상회담에서 ‘진주만’을 꺼내들어 일본인들을 당황케 만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미·중 동맹’까지 거론했다. 2차대전 당시 미국과 중국이 동맹을 맺고 군국주의 일본과 싸운 점을 언급한 셈이다. 놀란 일본 정부는 미국 행정부의 ‘기류’를 읽는 데 외교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26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는 트럼프가 중국을 가리켜 ‘미국의 옛 동맹(ally)’이란 취지의 언급을 한 데 대한 대응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본이 아닌) 제3국 간의 사안인 만큼 일일이 언급하지 않겠다”며 입을 닫았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 24일 국빈 방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부부를 위한 백악관 환영식에서 “2차대전 당시 미국과 중국이 동맹이었다”고 발언했다.
이와 관련해 다카이치는 “미·일 간에 전쟁은 있었지만, 그 후 확실하게 화해를 이뤄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매우 강력한 유대로 맺어진 동맹국으로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확실한 화해를 이뤘다’는 다카이치의 인식에 트럼프가 전적으로 동의할 것인지 의문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3월 취임 후 처음 백악관을 찾은 다카이치의 면전에서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언급했다. ‘이란 공습을 왜 일본 등 동맹들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았느냐’는 일본 취재진의 질문에 트럼프가 “그럼 일본은 왜 진주만 공습을 우리(미국)에게 알리지 않았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당시 미국 측 배석자들은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여 웃음을 터뜨렸다. 반면 일본이 ‘흑역사’로 여기는 80여년 전의 과거사를 갑자기 꺼내든 트럼프의 돌출 언행에 다카이치를 비롯한 일본 측 참석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트럼프의 ‘미·중 동맹’ 언급을 일본 정부가 더욱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시진핑이 적극 호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공식 환영식과 정상회담 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 도중 연설에서 “80여년 전 양국 국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며 일본 군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섰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역사적 유대를 강조한 트럼프에 제대로 화답한 셈이다.
시진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와 불로 단련된 이 (미·중 간의) 우정은 반드시 대대로 이어질 것”이라고까지 했다. 일본과 중국은 지난 2025년 11월 ‘대만 유사시 자위대 파병’을 내비친 다카니치의 발언 이후 관계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시진핑의 말은 ‘미국이 중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과거과 같이 일방적으로 일본 편만 들지는 않을 것’이란 뜻처럼 들린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와 시진핑의 발언이 향후 중국의 대일(對日) 선전전에 활용될 가능성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 언론은 다카이치가 조만간 트럼프와 통화 일정을 잡은 다음 이를 통해서 중국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재차 강조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