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황태자 오상욱, 역대급 ‘대형사고’ 쳤다…‘마지막 한 점’으로 사브르 4연패 [아시안게임]

41-44로 몰리다 박상원 추격…일본 안방서 45-44 역전승
구본길·김정환·김준호 떠난 자리…도경동·박상원·황희근 새 얼굴 계보
개인전 이어 단체전까지 2연속 2관왕…아시안게임 금메달 5개
2012 런던부터 올림픽 3연패…2028 LA서 4연패 도전

[나고야=권준영 기자] 한국 남자 사브르가 또 한 번 아시아 정상에 섰다. 이번엔 더 극적이었다. 개최국 일본과 맞선 결승에서 3점 차 열세를 뒤집은 끝에 마지막 한 점으로 승부를 갈랐다. 선배들이 쌓아 올린 금빛 역사를 물려받은 오상욱과 후배들은 아시안게임 단체전 4연패를 완성하며 한국 사브르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대한민국 펜싱 대표팀 오상욱이 26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관중석을 향해 펜싱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도코나메=연합뉴스
대한민국 펜싱 대표팀 오상욱이 26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일본에 역전승을 거둬 아시안게임 4연패를 달성한 뒤 기뻐하고 있다. 도코나메=뉴스1

오상욱(대전광역시청), 박상원(대전광역시청), 도경동(대구광역시청), 황희근(국군체육부대)으로 구성된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6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일본을 45-44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4회 연속 우승이다.

 

승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한국은 경기 막판 일본에 41-44로 끌려갔다. 한 점만 더 내주면 우승을 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8바우트에 나선 박상원이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4점까지 벌어졌던 격차를 한 점으로 좁혀 마지막 주자 오상욱에게 넘겼다.

 

그리고 오상욱이 나섰다. 44-44.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오상욱은 마지막 바우트에서 전광석화 같은 찌르기로 일본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한 점이 찍히는 순간 한국 선수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일본 홈 관중석은 침묵에 잠겼다. 45-44. 1점 차 역전승이었다.

 

오상욱에게는 개인전 금메달에 이은 두 번째 금메달이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회 연속 2관왕이다. 아시안게임 통산 금메달도 5개로 늘어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 기록을 가진 구본길(6개)을 1개 차로 추격했다.

 

이번 우승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오상욱의 역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30일 만 30세가 되는 그는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의 맏형으로 첫 국제종합대회를 치렀다. 과거에는 구본길과 김정환 등 선배들의 뒤를 따르던 에이스였다면, 이제는 후배들을 이끌고 마지막 승부를 책임지는 주장으로 팀의 중심에 섰다.

 

한국 남자 사브르는 오랫동안 세대가 바뀔 때마다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인천 대회에서는 오은석·원우영·김정환·구본길이 금메달을 합작했다. 자카르타·팔렘방과 항저우에서는 김정환·구본길·김준호·오상욱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이 만들어낸 강력한 전력에 펜싱과 ‘어벤져스’를 합친 ‘어펜져스’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항저우 대회 이후에는 또 한 번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김정환과 김준호가 태극마크를 내려놓았고, 파리 올림픽에서는 오상욱·구본길에 박상원·도경동이 합류한 ‘뉴 어펜져스’가 등장했다. 이후 구본길까지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번 대회에는 오상욱을 제외하면 모두 새로운 세대가 주축이 됐다.

 

도경동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후보 선수로 대기하다 단체전 결승에 전격 투입돼 금메달을 일궈낸 뒤 성장세를 이어갔다.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준우승을 차지하며 오상욱과 함께 한국 사브르의 차세대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이번 대회 개인전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지만 단체전 금메달로 아쉬움을 달랬다.

 

박상원은 빠른 발과 강한 공격을 앞세워 팀의 허리를 맡았다. 파리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넓혔다.

 

23세의 황희근은 가장 어린 멤버로 대표팀에 힘을 보탰다. 결승에 직접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생애 첫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병역 혜택까지 받아 ‘조기 전역’이라는 또 다른 결실도 얻게 됐다.

 

오상욱 역시 순탄하게 이번 대회를 맞은 것은 아니었다. 대회를 앞두고 허리 부상에 시달렸지만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 특히 단체전에서는 팀이 가장 어려운 순간 마지막 주자로 나서 승부를 끝냈다.

 

대한민국 펜싱 대표팀 오상욱 등 선수들이 26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시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펜싱 사브르 남자 단체 결승에서 일본을 45-44로 꺾은 뒤 기뻐하고 있다. 도코나메=뉴시스
대한민국 펜싱 대표팀 오상욱이 26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 결승에서 일본 요사다 겐토를 상대로 공격하고 있다. 도코나메=연합뉴스

한국 남자 사브르는 2012년 런던 올림픽부터 2024년 파리 올림픽까지 단체전 3연패를 달성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이번 대회까지 4회 연속 금메달을 이어가며 국제종합대회에서 꾸준히 정상권을 지켜왔다.

 

이제 시선은 2028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으로 향한다. 구본길과 김정환, 김준호가 떠난 뒤 새로운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이 첫 국제종합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다음 올림픽을 향한 출발점도 마련했다.

 

구본길 SBS 해설위원은 “오상욱이 대표팀의 맏형으로 첫 아시안게임을 치르며 후배들을 잘 이끌어 고비를 넘고 단체전 4연패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니 올림픽에서도 한국 사브르가 역사를 이어갈 거라는 확신이 든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