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다쳤다, 정치가 앞설 때인가 [김세희의 역사ON]

과거는 현재를 관통합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수천·수백 년 전 벌어진 사건과 문제는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됩니다. 특히 사회·정치·경제 분야에서 빚어지는 고질적 병폐는 시대를 달리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세희의 역사ON’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 등 사료에 기록된 사건·인물·제도를 오늘의 현안과 연결해 살펴보고 논평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성찰의 거울로 삼아 오늘의 현실을 이해할 단서를 찾겠습니다.

 

2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상공에서 수리온 헬기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 숙종 37년, 진도에서 터진 화약

 

1711년 조선 숙종 시기 진도군에서 화약이 터졌다. 군관 이압과 감영 군관 위혁만은 얼굴이 문드러져 피부가 벗겨졌다. 관아에 속한 7명은 심한 화상을 입었고, 4명이 숨졌다. 전라도 순무사 권상유가 화약을 시험하다 벌어진 대참사였다. 권상유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사고를 보고받은 숙종은 즉시 사망자와 피해자에 대한 구휼조치를 시행하도록 명했다.

 

2. 예종 때, 눈길에서 발가락을 잃은 군사들

 

1468년 겨울, 명나라에 다녀오던 사신들을 맞으러 간 군사들이 혹한에 쓰러졌다. 이듬해 5월 중추부 지사 이석형과 행 상호군 이파 등이 예종에게 올린 글에 따르면 이들을 요동으로 마중 나온 군사 다수가 동상에 걸렸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었다. 폭설로 행군이 힘겨웠던 데다 야영마저 늦어져서다. 군사들은 손발을 움직이기 어려운 만큼 얼고 굶주린 채 불도 피우지 못하고 눈 위에서 밤을 지새웠다. 양식과 말먹이도 떨어졌다. 

 

이후 책임을 둘러싼 주장은 엇갈렸다. 군을 이끈 단련사 오서와 이중손 등은 사상자가 발생한 책임을 먼저 떠난 이석형 일행에 돌렸다. 이석형 등은 오서와 이중손 등이 군사를 제대로 통솔하지 못해 초래한 일이라고 맞섰다. 또 자신들이 떠나기 전부터 사망자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사건 조사 결과 실제 오서의 일 처리는 미숙했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전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명회가 와서 등을 조사하자고 청하자 예종은 사헌부에 넘겨 국문하게 했다.

 

3. 2026년 DMZ 지뢰 추정 폭발사고 

 

지난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로 개척 작전을 하던 25사단 간부 3명이 지뢰 폭발로 추정되는 사고로 부상을 당했다. 수색대대장은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까지 입었다. 북한군이 매설했거나 북한 지역에서 떠내려온 지뢰가 폭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튿날 강신철 신임 국방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카이사르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인용하며 승리하는 군대를 말했다. 연설 서두에 병상에 누운 전우들을 언급하긴 했지만, ‘승리’의 구호는 사고 현장의 현실과 괴리가 컸다. 다만 강 장관은 취임식 뒤 장병 지원과 원인 규명을 약속하고 다음 날 병원도 찾았다. 이제 그 약속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정치권은 사고 조사 방식을 놓고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여야의 현장 검증을 제안하고 국민의힘은 국방위 차원의 현안 질의 개최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의 방식을 공격할 때가 아니다. 사고의 증거와 경위를 빠짐없이 살필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격언을 잊지 말길 바란다.

 

숙종은 사망자를 구휼하게 했고, 예종은 사고의 책임을 따지게 했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부상 장병에 대한 진심 어린 위로와 치료, 사고 원인에 대한 분명한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