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정부가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 정권 시절 구금된 정치범 수십명을 석방했다. 마두로 체포 후 베네수엘라를 이끄는 델리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이 미국에 잘 보이려고 내린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반(反)마두로 정권의 선봉에 섰던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범(汎)야권 대선 후보는 여전히 베네수엘라 정부의 강한 견제를 받고 있다.
26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인권 단체들은 이날 “상당수의 정치범이 석방됐다”고 밝혔다. 정확한 인원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최소 수십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에는 마두로 암살 시도에 가담한 대학생, 마두로가 당선된 2024년 대선을 “부정 선거”라고 주장한 야권 인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베네수엘라의 대표적 인권 단체 JEP는 “베네수엘라 감옥에 450명의 정치범이 수감 중이고 그 가운데 20명이 외국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관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다. 전임자 마두로와 마찬가지로 로드리게스도 ‘베네수엘라가 반체제 인사들을 구금하고 있다’는 주장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점 석방이 미국을 의식한 조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로드리게스는 지난 23일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고, 거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으로 만났다. 두 사람의 회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 자리에서 트럼프가 로드리게스에게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로드리게스는 취임 후 처음으로 행한 유엔 총회 연설에서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축출 후) 재건을 위한 민주적 전환을 시작했다”며 사법 제도 개혁, 야당 차별 중단 등을 약속했다. 그는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외교 관계 개선 그리고 협력 재개의 길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다”면서 트럼프 그리고 미국 행정부에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지난 1월 트럼프의 명령을 받은 미군 특수부대가 당시 대통령이던 마두로를 전격 체포해 뉴욕으로 압송한 사건에 관해선 일언반구도 거론하지 않았다.
현재 임시 대통령 신분인 로드리게스는 마두로를 대체할 정식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 실시도 공언했다. 다만 구체적 일정에 관해선 함구했다. 베네수엘라 야권이 가급적 빨리 대선을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가운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2025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차도를 이미 단일 대선 후보로 추대한 상태다. 여권은 트럼프와 사이가 좋은 로드리게스를 후보로 내보낼 가능성이 크다. 로드리게스 입장에선 미국의 지원을 토대로 베네수엘라 경제를 어느 정도 살려놓은 뒤 선거에 임하는 편이 유리하고, 그러려면 최대한 시간을 끌 필요가 있다. 정치범 석방 등 유화 정책을 펴면서도 로드리게스 정부는 ‘현재 해외에 있는 마차도가 입국하는 경우 체포하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 또한 야권 지지자들의 결속과 조직화를 최대한 늦추려는 의도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