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던가. 슈퍼라운드에서 선수 전원이 사회인 야구로 구성된 일본에 영봉패를 당하며 스타일을 제대로 구겼던 한국 야구 대표팀이 결승에서 접전 끝에 신승을 거두며 아시안게임 5연패를 차지했다. 결승에서도 시원스런 경기력이 나오지 않고 8회에야 겨우 이기긴 했지만, 어쨌든 금메달이다.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성공했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일본과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에서 일본을 3-1로 꺾었다. 2010 광저우를 시작으로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2 항저우까지 모두 제패했던 한국 야구는 이번 아이치-나고야에서도 어쨌든 금메달을 목에 거는 데 성공했다.
슈퍼라운드에서 일본에 당했던 영봉패의 굴욕을 결승에서의 승리로 설욕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뒷맛은 개운치 않은 금메달이다. 류지현 감독과 벤치의 이상한 투수 운영 때문이었다.
이날도 한국 타선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일본은 슈퍼라운드에서 한국을 상대로 7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던 히구치 신을 다시 선발로 냈다. 하루만 쉬고 마운드에 올랐기에 피곤하지 않을리 없지만, 한국 타선은 히구치를 제대로 공략해내지 못했다. 그만큼 히구치는 하루 휴식에도 140km 중반대의 직구와 변화구로 KBO리그 A급 타자들로 구성된 한국 타선에 대등히 맞섰다.
선취점을 낸 건 한국이었다. 0-0으로 맞선 2회 선두타자 윤동희(롯데)가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문현빈(한화)이 좌중간에 떨어지는 적시타로 전광판의 숫자를 ‘1’로 바꿨다.
이후 김지찬의 희생 번트 때 문현빈이 2루에서 태그아웃됐으나 심판이 일본 2루수의 발이 떨어지는 것만을 보고 세이프 판정을 내리는 오심으로 한국을 도와줬지만, 추가점은 내지 못했다. 조형우의 희생번트와 김주원의 고의4구를 골라 1사 만루를 만들었지만, 박준순이 히구치에 삼진, 김도영이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히구치는 3이닝 1실점 후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한국은 가요 슈이치로에게 2이닝, 후치가미 요시키에게도 2이닝 동안 틀어막히며 추가점을 뽑지 못해 1-0 불안한 리드를 이어갔다.
답답한 타선 때문에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경기를 버티게 해준 건 에이스 곽빈(두산)의 역투였다. 6회까지 92구를 던지며 1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다.
류지현 감독은 7회에도 마운드에 곽빈을 올렸다. 그만큼 대표팀 불펜 투수들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곽빈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독이 됐다. 곽빈은 7회 들어 직구 스피드는 155km를 찍긴 했지만, 빗 속 투구로 지친 듯 가운데 몰리는 공이 많았다. 선두타자 아이자와 료스케에게 중전안타를 내준 곽빈은 야노 유키야를 삼진으로 돌려세웠지만, 미즈타니 쇼헤이와 사토 유키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1-1 동점을 허용했다. 곽빈에게 무려 111구를 던지게 하는 류지현 감독과 최원호 투수코치의 이상한 운영 때문에 패배 위기에 몰리고 말았다.
1사 1,2루 위기에서 류지현 감독은 그제서야 조병현(SSG) 카드를 꺼내들었다. 다행히 조병현이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운 덕분에 1-1 동점으로 7회를 마칠 수 있었다. 조병현 덕분에 곽빈의 결승에서의 성적표는 6.1이닝 4피안타 9탈삼진 1실점. 조별리그 대만전까지 포함하면 13.1이닝 1실점으로 에이스의 임무를 다한 곽빈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담 증세로 한 번도 마운드에 서지 못한 ‘마음의 빚’을 다 갚았다.
벤치의 이상한 운영으로 넘어간 분위기를 가져온 건 그때까지 침묵하던 타선이었다. 선두타자 김지찬(삼성)이 유격수 키를 넘기는 짧은 안타에 빠르게 달려 2루타를 만들어냈다. 조형우(SSG)의 희생번트와 김주원(NC)의 볼넷으로 1사 1, 3루를 만들었지만, 정준재(SSG)의 3루 땅볼 때 3루 주자 김지찬이 런다운에 걸려 태그아웃되고 말았다. 더그아웃이 차갑게 얼어붙으려는 찰나에 KBO리그 최고의 타자 김도영(KIA)이 해결사로 나섰다. 이번 아시안게임 내내 타격감이 땅으로 처박히던 김도영은 3루 방면 강습 타구를 날렸고, 일본 3루수가 이를 잡아내지 못해 내야 안타가 되면서 김주원이 홈을 밟았다. 2-1. 이후 문보경의 적시타까지 터지면서 3-1로 달아났다.
이대로 끝날 경기가 아니었다. 8회 1사 후 조병현이 안타를 맞은 뒤 중견수 김지찬의 실책이 나와 1사 2루 위기에 몰렸다. 류지현 감독은 마운드를 KT 마무리 박영현으로 바꿨다. 이대로 아웃카운트 5개를 박영현에게 맡기겠다는 얘기. 수많은 군 미필인 불펜 투수들이 있지만, 이날 마운드는 군필자인 곽빈-조병현-박영현이 책임졌다.
박영현은 등판하자마자 무코야마 모토키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해 1, 3루 위기에 몰렸지만, 후속타자들을 삼진과 뜬공으로 잡아내며 실점없이 이닝을 마쳤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박영현은 2사를 잡아놓고 볼넷과 안타를 내주며 1,2루 위기에 몰렸지만, 대타 시바사키 마사토를 3구 삼진으로 잡아내며 아시안게이 5연패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