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AI시대에 문학은 사라질 것인가

기계가 쓴 소설도 여전히 소설로 볼 수 있을까
인공지능 영향력서 벗어나기 점점 힘들어져

문학의 나라 프랑스에서 최근 큰 인기를 누리는 소설 ‘이것이 아니면 죽음이었다’를 둘러싸고 인공지능(AI) 논쟁이 한창이다. 텍스트에서 AI의 역할을 탐색하는 ‘팬그램’은 이 소설 거의 전부를 AI가 썼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해당 작가 텔리송 오렐리엥은 이런 비난을 부정하면서 자신을 침묵하게 만들려는 세력들의 인종차별적 공격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오렐리엥은 카리브해 아이티 출신 젊은 30대 작가이며 현재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이미 4만권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로 등장한 그의 소설은 역사 교사가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조국을 떠나 난민으로 해외를 떠돌며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작가와 작품 모두 진보적 성향이 강한 파리 출판계는 선호하나 보수세력이라면 못마땅하게 볼 수 있는 배경이다.



문제는 과거 그의 글들도 표절의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25일 프랑스의 전통 깊은 공쿠르문학상 위원회가 그의 작품을 수상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고, 캐나다의 소속 출판사도 소설 관련 행사를 취소하고 나섰다. 프랑스와 캐나다에서 이 작가와 소설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계속될 예정이나, 정작 중요한 부분은 창작과 AI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기계가 쓴 소설은 여전히 소설인가. 아니면 인간이 써야만 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미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은 1953년 발표한 단편 ‘자동 작문 기계’라는 작품에서 비상한 예측력을 갖고 이 문제를 다뤘다.

문법은 수학과 같아서 알고리즘을 통해 텍스트를 생산할 수 있다는 70여년 전 상상력이 놀라운 따름이다. 소설은 글을 쓰는 기계가 너무나도 효율적이라 작가들은 기계에 이름만 빌려주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한다는 씁쓸한 결말이다.

‘이것이 아니면 죽음이었다’의 예찬론자들은 누가 썼건 간에 이 소설이 엄청난 흡입력과 매력,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문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오렐리엥을 변호하는 측에서는 AI를 사용했더라도 한낱 도구에 불과하며 창작의 주체는 여전히 작가라고 강조한다.

반면 고독하게 흰 종이 앞에 앉아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이미지에 충실한 전통주의자들은 AI를 동원한 글쓰기란 사기에 가깝다고 여긴다. 공쿠르문학상 위원회의 엄격한 결론이며 실제 독자들의 여론도 이런 시각에 가깝다. 문학이란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 작가와 독자의 개인적인 교감이고 소통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의 해결책은 투명성일지도 모른다. 프롬프트만 작가나 출판사가 제공하고 글쓰기 작업은 주로 AI가 한 작품부터 ‘글루텐 프리’나 ‘제로코크’처럼 ‘AI 제로’ 소설까지 표지에 명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과거 아이폰에는 ‘애플이 캘리포니아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디자인은 홍길동, 작성은 AI’와 같은 책들이 나올 기세다.

더 심각하고 구조적인 변화는 ‘AI 프리’를 지향하는 작가들조차 AI가 대량으로 쏟아내 일상의 텍스트를 지배하는 AI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사실이다.

AI를 만들어 낸 주체는 인간이지만 이제는 기계가 인간의 문법과 표현을 변화시키는 상호 영향의 텍스트 하이브리드화가 진행될 것이라는 의미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