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 집 옆 전자파 공포” vs “미니 DC, 지나친 우려” [심층기획-수도권 AI데이터센터 난립 논란]

10㎿ 미만 전기사용 신청 올 66건
2025년 33건서 1년 새 두 배로 급증
95%가 수도권 집중… 서울 51건
‘9.9㎿ 쪼개기’ 전력평가 회피 의혹

주거지 인근 건립에 주민 반발 확산
“정부, 지원에만 치중… 규제는 사각”
시행사 “전자파 기준치 1% 미만”
일각선 공론화 절차 필요성 지적도
“8m예요. 그냥 차 2대 지나는 도로 지나면 바로예요.”

 

서울 금천구 독산동 151번지에 사는 주민 A씨는 지난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택 인근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선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151번지 일대에는 데이터센터 2곳이 올 상반기 건축허가를 접수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리고 매주 일요일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위해 AI(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제작한 사진. Chat GPT 생성

비대위 임원진인 A씨는 “우리가 원치도 않았는데 전자파 우려·화재 위험이 있는 데이터센터가 불쑥 생겨서 24시간 365일 돌아가게 생긴 것”이라며 “사업자 측은 주민설명회에서 전자파가 헤어드라이어 수준이라고 했지만 우리가 헤어드라이어를 24시간 쓰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최근 독산동 151번지 사례처럼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수도권 중심으로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인터넷으로 서버·저장공간을 빌려 쓰는 서비스) 수요가 밀집한 수도권에 초대형(하이퍼스케일)에 못 미치는 중소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동시다발로 추진되면서다. 실제 2024년까지만 해도 한해 한 자릿수에 그치던 10㎿(메가와트) 미만 규모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은 올해 8월 기준으로만 60건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95% 이상이 수도권 소재 사업이었다.

◆평가 회피?… 10㎿ 미만 급증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이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받은 ‘2020년∼2026년 8월 데이터센터 전기사용신청 목록’ 자료를 토대로 계약전력 규모별로 사업을 분석한 결과, 계약전력 10㎿ 미만 신청은 2022년까지 한 건도 없고 2023년 1건, 2024년 2건 수준이다가 지난해 33건으로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8월까지 그 두 배인 66건이 접수됐다. 이는 공급완료·접수취소 등이 제외된 건이라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지난해부터 데이터센터 사업 4건 중 3건꼴로 10㎿ 미만이다. 2025년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 42건 중 78.6%(33건), 올해 1∼8월 88건 중 75%(66건)가 10㎿ 미만 사업이었다.

 

이런 10㎿ 미만 사업은 특히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올해 1∼8월 10㎿ 미만 신청 건수 66건 중 95.5%(63건)가 수도권이었고, 그중에서도 서울이 51건(77.3%)으로 월등하게 많았다. 경기와 인천은 각 9.1%(6건)씩이었다. 비수도권은 다 합쳐도 3건(광주·전남 2건, 강원 1건)에 불과했다.

 

업계에서는 수요가 뒷받침되는 수도권이 이른바 ‘에지(소규모 분산형) 데이터센터’의 최적 입지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2024년부터 계약전력 10㎿ 이상 시설에 대한 전력계통영향평가가 의무화되면서 기업들이 승인이 어려운 수도권의 경우 10㎿ 미만 데이터센터 건설을 택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독산동 151번지 데이터센터 반대 비대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평가제를 피하기 위해 9.9㎿씩 쪼개서 들어오고 있다”며 “사업자 입장에서야 비교적 작은 규모라 하겠지만 근거리에 9.9㎿가 두 개 들어오면 여기 주민들은 결국 20㎿ 규모 데이터센터를 끼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경기 과천 주암지구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주민모임이 최근 과천시청 정문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데이터센터 사업 건축허가 불허를 촉구하고 있다. 주민모임 제공

◆규제 사각지대 속 갈등 확산

 

금천구 독산동에서는 151번지와 별개로 724-4번지에서도 4.98㎿급 데이터센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곳도 주민 반대가 거세다. 이 데이터센터는 지하 1층∼지상 8층, 높이 58.8m 규모로 2024년 10월 건축허가를 받았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 중심으로 올해 1월부터 민원을 제기해오다 2월 말부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아침 금천구청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이 지역의 한 주민은 “해외 뉴스에서 데이터센터 전자파·소음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지 않나. 이렇게 위험한 시설이 어떤 절차도 거치지 않고 아파트 바로 옆에 불쑥 들어온다는 게 너무 황당하다”고 했다. 데이터센터는 건축법 시행령상 ‘방송통신시설’로 분류돼 일반적으로 사전예고 없이 건축허가 절차가 진행된다.

 

사업자 측은 주민들 우려가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시행사 관계자는 “해외 보도는 대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에 대한 것이다. 저희가 추진 중인 건 가장 작은 규모다. 전자파 같은 경우 시뮬레이션 결과 최댓값이 기준치 1% 미만으로 나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택지로 개발 중인 경기 과천 주암지구에는 최근 데이터센터로 인해 입주 예정인 주민들과 대토 보상(새로 조성되는 토지로 주는 보상)을 받은 원주민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역 업무시설용지 5개 필지에 5개 데이터센터(총 50㎿)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토지를 수용당한 원주민들이 대토 보상권을 현물 출자해 설립한 부동산투자회사(리츠)가 공동 시행사로 참여하고 있다.

 

주암지구 데이터센터 건립반대 주민 모임에서 활동 중인 B씨는 5개 데이터센터에 대해 “교묘하게 법인을 다르게 해 사업을 나누는 방법으로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피해 들어오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한전과 소관 부처가 인접 필지에 실질적으로 동일한 사업주체가 추진하는 데이터센터 계약전력 합산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유권해석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했다.

 

데이터센터 공동 시행사로 참여 중인 대토 보상 원주민 측은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으면 현재 재정 상황상 리츠가 부도 위기를 맞게 된다며 사업 추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주암지구 대토사업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우리는 땅을 다 제공하면서 공공에 기여했다. 지금 시장 상황이 안 좋다 보니 단순 사무용 건물은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며 “부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데이터센터”라고 했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위해 AI(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제작한 사진. Chat GPT 생성

◆“진흥만 있고 규칙이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데이터센터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종합적인 규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 정부는 메가프로젝트처럼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대규모 기반시설 투자나 전용 전기요금제 등 지원책 마련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같은 경우 최근에야 데이터센터 난립에 제동을 걸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시 구청장협의회는 지난달 12일 정기회의에서 데이터센터 건립 시 건축심의 의무화, 제2·3종 일반주거지역 내 데이터센터 건립 제한 등을 골자로 한 제도 개선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서울시에 건의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우리나라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규제에 허점이 많다. 일례로 방송통신시설로 분류돼 있다 보니 사각지대가 발생하면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AI 산업 육성이란 구호 아래 있는 규제도 면제해주려는 태세”라면서 “AI 데이터센터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규제 정책을 논의하고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장은 “정부가 진흥 중심으로 가져가다 보니 갈등에는 손을 놓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며 “소규모 데이터센터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고 일반 건물 수준의 규제 정도만 적용된다. 소규모 데이터센터에 대해서도 주민 공론화 절차를 고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용우 의원도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이 빠르게 늘고 수도권 집중도 뚜렷해지는 만큼, 전력계통 여건과 주민 수용성을 함께 고려한 입지 기준을 마련하고 주민과의 사전 협의 절차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