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는 처음으로 요리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좋은 기억을 남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끼 식사로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요리사의 꿈으로 이어졌다. 특히 다양한 식재료를 자유롭게 다루고, 강한 화력과 섬세한 기술이 공존하는 중식의 세계는 어린 그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불과 시간, 그리고 셰프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변화는 그를 중식이라는 길로 이끌었다.
왕 셰프가 처음 주방에 들어선 것은 열아홉 살이었다. 그 시작에는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멘토인 막내 매형, 정수주 주방장이 있었다. 매형은 “무조건 3년은 버텨라”는 단 한마디를 남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요리를 배우라는 의미보다, 요리사의 삶을 견뎌보라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곳이 63빌딩 백리향이었다. 처음 마주한 주방은 상상보다 훨씬 치열했다. 매일 반복되는 긴장감, 강한 책임감, 그리고 수없이 이어지는 기본기의 반복은 어린 셰프에게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만두고 싶었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하루를 버티고, 또 하루를 버티다 보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낫다”는 마음으로 쌓인 시간이 결국 지금의 왕홍룡 셰프를 만들었다.
회빈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어향 벨루테소스 일품 해삼’이다. 중식의 대표 소스인 어향은 깊고 진한 풍미를 자랑하지만 자칫 강한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왕홍룡 셰프는 여기에 프렌치의 벨루테 소스를 접목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조리법을 단순히 섞은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점을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해삼은 먼저 정성껏 손질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조려 부드러운 식감을 만든다. 그 안에는 다진 새우를 채워 넣고 다시 쪄낸 뒤 마지막에 얇게 튀겨낸다. 한입 베어 물면 해삼 특유의 탄력과 새우의 풍부한 감칠맛, 그리고 바삭한 식감이 차례대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더해지는 어향 벨루테 소스는 강렬한 향신료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으로 전체의 균형을 잡아준다. 전통 중식과 현대적인 감각이 가장 자연스럽게 만나는 회빈만의 시그니처다.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북경오리다. 익숙한 메뉴일수록 차별화가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왕 셰프는 가장 먼저 소스부터 바꿨다. 일반적인 해선장 대신 땅콩과 참깨를 중심으로 한 고소한 소스를 개발해 오리의 풍미를 더욱 부드럽게 살렸다. 함께 곁들이는 재료 역시 기존의 틀을 벗어났다. 밀전병뿐 아니라 어린 채소, 새싹삼, 자연송이, 트러플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식재료를 함께 구성해 북경오리를 더욱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진짜 차별점은 식사의 흐름이다. 오리 한 마리의 가치가 첫 번째 접시에서 끝나지 않도록 마라 오리 뼈 튀김, 양상추쌈, 오리탕 가운데 원하는 요리를 추가 비용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한 마리의 오리를 끝까지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한 코스 자체가 회빈의 철학을 보여준다.
왕 셰프는 앞으로 회빈을 통해 한국식 중식 파인다이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중식이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이라는 오래된 인식을 넘어, 정제되고 섬세하며 건강한 미식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국내 고객은 물론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에서 경험한 중식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기억을 남기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요리는 결국 누군가를 향한 가장 따뜻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처럼 회빈의 음식은 맛보다 먼저 마음을 담는다. 그리고 그 마음은 한 접시를 넘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