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 회장이 이끄는 DL그룹이 외부 기업과 손잡고 개발한 기술을 실제 현장과 상품으로 연결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히 스타트업이나 신기술을 발굴하는 공모전에 머무르지 않는다. DL이앤씨는 중소·전문기업과 공동 연구개발(R&D)을 진행한 뒤 성능 검증과 특허·인증, 현장 적용, 제품 판매와 외부 사업화까지 이어가는 방식으로 협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실제 성과가 나온 대표 사례는 환경가전기업 힘펠과 개발한 주방 후드다.
DL이앤씨와 힘펠이 공동 개발한 ‘디 사일런트 후드’는 후드 팬을 주방이 아닌 별도 공간에 설치하는 방식 등을 적용해 소음을 낮춘 제품이다. 2024년 IR52 장영실상을 받았고, 당시 DL이앤씨가 공개한 전년도 판매량은 2만대에 육박했다. 건설사가 협력업체와 개발한 기술이 아파트 현장을 넘어 실제 제품 판매로 이어진 사례다.
욕실과 도장 공정에서도 공동개발 기술이 현장에 들어갔다.
한솔홈데코와 개발한 욕실용 건식벽체 관련 기술은 국토교통부 건설신기술 인증을 받은 뒤 아크로와 e편한세상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DL이앤씨는 자체 기술 소개에서도 건식 욕실 시스템을 e편한세상 김포·파주·고덕·옥정 등 다수 사업지에 적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강남제비스코와는 2021년부터 공동주택의 내구성을 높이는 페인트 기술을 함께 개발했다. 특허와 기술인증을 거쳐 페인트 분야 건설신기술 인증까지 확보했다.
업종의 경계를 넘은 공동개발도 있다. 선박용 소방설비를 만드는 탱크테크와는 선박 화재진압 기술을 건축 분야에 접목해 ‘건물용 전기차 화재진압 시스템’을 개발했다. 중소기업이 보유한 전문기술에 DL이앤씨의 설계·시공 경험을 결합한 방식이다.
공동개발 기술 가운데 일부는 개별 현장을 넘어 DL이앤씨의 표준 기술로 자리 잡고 있다.
영신과 개발한 인공지능(AI) 기반 ‘파일 관입량 자동측정 시스템(PAMS)’은 2022년 표준화된 뒤 PHC파일 설계 현장 전체에 적용되고 있다. 사람이 가까이에서 측정하던 파일 관입량과 리바운드량을 전용 촬영장비와 AI로 확인하는 기술로, 최대 20m 거리에서도 측정할 수 있다.
드론 기술도 적용 현장이 빠르게 늘었다.
메이사와 공동 개발한 드론 플랫폼 기반 토공·파일 공사관리 솔루션은 2023년 표준화 이후 70여개 현장에 적용됐다. 성건엔지니어링과 만든 AI 외벽 균열 탐지 솔루션 ‘크랙N 드론’은 90여개 현장에 투입됐다. DL이앤씨는 이들 기술을 다른 건설사와 공공기관, 안전진단업체 등 외부 시장으로 확대하는 공동사업화도 추진하고 있다.
전력 분야에서는 가온전선과 협업하고 있다.
DL이앤씨와 가온전선은 2023년부터 배관 일체형 ACF 케이블의 시공 공법과 전용 부속 자재를 공동 개발했다. 신축 공동주택에서 성능과 시공성 검증을 마쳤으며 DL이앤씨는 2027년부터 신축 공동주택에 본격 적용할 계획이다.
가온전선은 DL이앤씨와의 공동개발과 별도로 미국 AI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시장에서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자회사 LSCUS는 지난 8월 미국 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2000억원 규모의 버스덕트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공급은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6월에는 생성형 AI 기업 데이터센터에 약 600억원 규모의 버스덕트 공급계약도 확보했다.
DL이앤씨와 공동개발한 ACF 케이블과 미국 데이터센터용 버스덕트는 서로 다른 사업이다. 다만 건설사가 전력 분야 전문기업과 기술을 공동개발하고, 협력 기업 역시 자체 전문 분야에서 해외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서 협업 생태계 확대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술협력의 범위는 주택 건설을 넘어 에너지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DL이앤씨는 2023년 미국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엑스에너지의 시리즈C 투자에 참여한 데 이어 올해 3월 엑스에너지와 ‘SMR 표준화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엑스에너지가 개발하는 4세대 SMR의 설계에 DL이앤씨의 원전·플랜트 엔지니어링 역량을 결합하는 사업이다. DL이앤씨에 따르면 표준화 설계는 2027년 상반기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완성된 설계는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초도호기를 시작으로 후속 프로젝트에 활용될 예정이다.
건설업계 전체에서도 외부기업 기술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FutureScape’를 통해 2023~2025년 21개 스타트업을 선정해 기술 실증과 공동사업화를 추진했고, 올해도 6개사를 뽑아 실증에 들어갔다. 현대건설 역시 올해 오픈이노베이션 공모에 지원한 156개사 가운데 12개사를 선정해 현업부서와 4개월간 기술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DL이앤씨의 차별점은 발굴한 기술을 실제 아파트와 건설현장에 반복 적용하고, 일부 기술은 회사 표준으로 확대하거나 제품 판매와 외부 사업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전문기업의 전문기술과 DL이앤씨의 건설 역량을 결합해 기술 발굴부터 공동개발, 성능 검증, 특허·인증, 현장 적용과 상품화까지 이어지는 협업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