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점은 길을 향해 열린 방이다. 적어도 온라인 상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온라인 거래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프라인 상점이 선택한 전략은 사람들 간의 ‘모임’과 그 속에서의 다양한 ‘경험’이다. 상품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경험을 이루며, 그 경험을 통해 다시 사람을 모으는 선순환의 흐름이다. 이런 전략에서 여전히 유효한 전제는 사람들이 길을 통해 상점으로 이른다는 것이다.
상점 앞을 지나는 길이 도시 공간의 실제 가로(街路·street)가 아닐 수도 있다. 쇼핑센터가 처음 시작된 1950년대 미국에서도 개발업자들은 실제 가로와 닮았지만 이보다 더 안전하고 쾌적한 ‘모조 도시’를 만들었다. 단, 방문자들이 쇼핑센터의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생각하지도 않은 구매를 하도록 유사 업종의 상점을 모으고 의도적으로 배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를 쇼핑센터를 처음 설계한 오스트리아 태생의 건축가 빅터 그루엔(Victor Gruen)의 이름을 따서 ‘그루엔 트랜스퍼(Gruen Transfer)’라 부른다.
그루엔 트랜스퍼의 전략 중 하나는 특색 있는 외부공간 조성이다. 구체적으로 방문객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상점이 향해 있는 외부공간에 정원이나 수공간 등을 만든다. 이 중에는 ‘걷고 싶은 거리’도 있는데,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트리플 스트리트(Triple Street)’가 그런 쇼핑센터 중 하나다. 이곳의 메인 콘셉트는 ‘한국을 대표하는 걷고 싶은 거리’이다.
희림건축 홈페이지에 따르면, 송도가 매립지이기에 존재할 수 없는 지형의 변화를 트리플 스트리트의 건축물에 반영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경사진 언더 스트리트, 성큰가든(Sunken garden) 형태의 메이플파크, 능선처럼 올라가 있는 D동의 지붕이다. 이를 통해, 설계자는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이곳을 지나는 승객들에게까지 특화된 경관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비행기에서 건축물의 형태가 이루는 모습이 얼마나 보일지는 알 수 없다.
정성조는 쇼핑센터를 방문한 이들이 다양한 즐거움과 체험을 원하기 때문에 유통업체 중심의 기존 개발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목한 건 ‘공간’이었는데, 트리플 스트리트에서는 ‘재미있는 골목길’이었다. 이를 위해 지구단위계획에서 지정한 공공보행통로를 세 개의 가로로 확장해 쇼핑센터의 기본 골격으로 설정했다. 길과 상점 간의 관계로 보면, 그라운드 스트리트는 상점을 연결하는 길이고, 언더 스트리트는 상점 앞을 지나가는 몰(Mall)이며, 파크 스트리트는 각층을 휘감아 오르내리는 트랙(Track)이다. 이 중 걸으며 재미를 느끼는 곳은 파크 스트리트다.
문제는 파크 스트리트가 상점과 길 간의 관계, 즉 ‘상점은 길을 향해 열린 방’이라는 전제와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D동 내부의 공중에 매달린 통로와 A동 앞에 빙글빙글 도는 경사로를 걸을 때면 ‘일부러 가야 하고 간판도 가리는데…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트리플 스트리트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A동 광장에 설치돼 있던 경사로는 철거됐다.
그럼에도 파크 스트리트의 역할은 명확했다. 바로 방문객들을 상층부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계단,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로는 충분히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트리플 스트리트의 운영사가 ‘원 테넌트-원 빌딩(One Tenant-One Building)’ 개념으로 임차인을 유치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일차적으로는 브랜드별로 하나의 건물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고객에게 브랜드 정체성을 더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1층과 2층을 하나로 묶어 임대함으로써 상층부의 공실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길의 기본적인 속성은 ‘연결’이다. 여기에 재미와 활력을 더하는 역할은 길을 향해 열린 상점과 이용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장소들이 맡는다. 그 길이 도시 공간의 실제 가로든, 쇼핑센터에 실제 가로를 모방한 가로든 마찬가지다. 미국의 도시설계가 제프 스펙(Jeff Speck)이 도시가 사람을 걷게 만들기 위해 충족해야 할 4가지 필수 조건으로 안전성(Safe), 편안함(Comfortable), 흥미로움(Interesting)과 함께 유용성(Useful)을 제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유용성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주거, 상업, 업무, 여가 시설을 도보권 내에 촘촘하게 섞는 혼합 용도 개발을 통한 ‘걷기의 생활화’를 의미한다.(‘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 도서출판 마티)
1978년, 런던의 한 강연장에 나이 든 건축가가 등장했다. ‘쇼핑센터의 창시자’라 불리는 빅터 그루엔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는 이런 호칭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며, 미국 교외 지역의 쇼핑센터 개발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변질시켰다고 개탄했다. 빅터 그루엔의 원래 구상은 지금과 같이 상점만 모여있는 ‘거대한 쇼핑 기계’가 아니었다. 그는 상점과 함께 도서관, 병원, 학교 심지어 주거시설까지 포함된 복합 커뮤니티 센터를 의도했다. 빅터 그루엔은 미국 교외에 오스트리아의 도심 광장과 같은 ‘공동체의 심장’을 이식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사생아 같은 개발들”이라고 평가한 쇼핑센터는 오히려 오스트리아를 미국처럼 만들어버렸다.
빅터 그루엔이 우려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온라인 상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오프라인 상점에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그건 쇼핑센터가 더이상 쇼핑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권유다. 그러려면 쇼핑센터는 상품을 거래하는 곳을 넘어 생활 속 필요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결국, 상점은 사람들이 모여 생활의 장(場)을 이루는 ‘진짜 길’을 향해 열린 방이 되어야 한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