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진정한 민생·개혁 대통령 요건은

대국민 회견서 국정비전 내건 李
단기 성과보다 구조개혁 힘쓰고
재정분권과 통합돌봄 기틀 다져
미래 세대를 위한 주춧돌 놓아야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중 펜싱 사브르 종목 오상욱 선수 출전 경기를 마음 졸이며 봤다. 그가 2년 전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잇따라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들 때문이었다. 미래가 창창한 스포츠 스타가 방송·광고 활동으로 훈련을 게을리하다가 정작 본 경기에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다행히 오 선수는 이번 경기에서도 금메달을 2개나 따 마음 한편이 뭉클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오 선수에게 느꼈던 불안감이 떠오른다. 민생과 개혁, 그리고 통합. 이 대통령이 최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내건 국정 화두였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변화를 이끌고 정부의 오랜 난제를 해결하며 갈등과 대결을 뛰어넘는 대동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송민섭 사회2부장

그러나 이 대통령이 미국·멕시코 순방 귀국길에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은 보는 두 눈을 의심케 했다. 이 대통령은 엑스(X)에 “악의를 가졌으되 훈련되고 조직돼 행동하는 소수가, 선량하나 분산된 다수를 좌지우지한다”며 개혁 완수를 위한 ‘친구님’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실천을 당부했다. 불과 열흘 전 민생을 위한 개혁과 통합을 당부했던 대통령이 개혁을 내세워 편가르기에 나선 것인가 당혹스러웠다.

 

이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윤석열정부의 의료개혁을 직격했다. 한마디로 ‘소리는 요란했으나 실제 성과는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전임 정부가 추진했던 교육·노동·연금·의료개혁이 ‘맹탕’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개혁의 본질을 외면하고 곁다리 이슈에만 치중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했어야 할 교육개혁은 ‘킬러문항 배제’ 소동으로 끝났다. 국민연금개혁은 기초·퇴직·공적연금과의 통폐합 대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인상폭 조율에만 그쳤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에 집중했어야 할 노동개혁은 ‘귀족노조 깨부수기’에 집중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재명정부의 개혁 의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은 아니다. ‘소리 없는 개혁’보다는 ‘개혁의 실종’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사회 전반의 중장기 구조개혁안은 보이지 않고 검수완박, 재제청 논란 등 정치 진영·이념 간 갈등과 대립 양상만 떠오른다.

 

현 정부의 국정 과제 중 가장 전향적으로 평가받는 국가 균형발전 전략마저 위태로운 형국이다. 수도권에서 먼 지역일수록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나 국가 보조금을 더 얹어주겠다는 정부 원칙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분명 수도권 일극체제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지역 정주의 필요조건이 일자리(기관·기업)와 교육(대학)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나 ‘서울대 10개 만들기’ 선도사업은 균형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듯하다.

 

그러나 지방을 바라보는 중앙정부의 철학은 여전히 ‘시혜’와 ‘통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광주군공항 이전을 둘러싼 전남광주시와 무안군 간 갈등이다. 지역 주민들의 오랜 이해와 생계가 걸려 있는 첨예한 사안이라면 대통령은 말을 아꼈어야 했다. 경청과 조율을 거쳐 양해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국가 정책 시행이 해당 지역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협력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무안군수를 질책했다.

 

지난 3월 말 전면 시행된 통합돌봄 서비스도 아쉽기는 매한가지이다.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요양·돌봄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폭적인 투자가 절실하지만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통합돌봄 예산은 1558억원에 불과하다. 지자체당 겨우 5억6000만원 수준으로 시민사회가 요구한 6447억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 같은 쥐꼬리 예산 배정으로 어떻게 각 지자체가 통합돌봄 기틀을 갖출 수 있겠는가.

 

막스 베버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란 단단한 목판에 천천히 구멍을 뚫는 작업과 같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역사에 민생·개혁·통합 지도자로 기록되려면 단기 성과나 특정 진영 지지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기 내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다음 10년, 20년을 지탱할 주춧돌을 놓겠다는 결기, 그게 바로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