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밀가루·전분당 등 국민 먹거리 가격을 짬짜미(담합)한 식품기업들에 최근 10년간 2조1911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지만 현재까지 실제 걷힌 돈은 2529억원, 전체의 11.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 등으로 6009억원이 깎였고,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등으로 1조3373억원은 아직 수납되지 않았다. 생활물가와 직결된 담합에 거액의 제재가 내려졌지만 실제 징수까지 이어진 금액은 10분의 1 수준이다.
2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0년간 식품업체 담합 적발 및 과징금 부과 현황’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담합으로 제재받은 식품업체는 중복을 제외하고 61개사였다. 부과된 과징금은 총 2조1911억원이다. 이 가운데 27.4%인 6009억원은 리니언시 등을 통해 감면됐고, 61.0%인 1조3373억원은 현재까지 미수납 상태다.
미수납액 가운데 기업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집행정지를 신청해 징수가 유예된 금액만 3942억원에 달했다. 제재가 확정된 뒤에도 납부하지 않은 순수 체납액은 95억원이었다. 과징금을 부과한 뒤 감면과 소송 절차를 거치면서 실제 국고에 들어온 금액이 크게 줄었다.
과징금은 소수 대형 업체와 기초 식재료 분야에 집중됐다. 상위 10개 기업의 부과액은 1조8575억원으로 전체의 84.8%를 차지했다. 삼양사가 설탕 1303억원, 밀가루 948억원, 전분당 2103억원 등 모두 435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CJ제일제당 3730억원, 대상 2341억원, 사조CPK 2001억원, 사조동아원 1831억원이 뒤를 이었다.
이들 상위 5개사의 부과액만 1조4257억원으로 전체의 65%를 넘었다. 올해 적발된 설탕·밀가루·전분당 등 기초 식재료 제조사들의 담합 관련 과징금은 1조8178억원으로 최근 10년 전체 부과액의 83%였다.
담합 대상은 가정의 식탁에서 군 급식까지 먹거리 전반에 걸쳤다. 2022년에는 가금류·빙과류 업체 35곳이 담합으로 적발돼 314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2017년에는 군 급식 납품업체 27개사가 돈가스·생선묵·불고기양념 등의 입찰에서 낙찰가격을 미리 정했다가 적발돼 336억원의 과징금을 물었다.
리니언시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담합의 실체를 내부 신고로 밝혀내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감면액이 6009억원에 이르면서 담합 주도 업체도 먼저 신고하면 거액의 과징금을 줄일 수 있는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의원은 “최근 몇 년간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서민들이 식비를 아끼는 동안 국민 먹거리를 책임져야 할 대형 식품기업들은 뒤로 밀실 야합을 맺고 부당 폭리를 취해왔다”며 “담합 주도 기업에 대한 리니언시 적용 배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 강화 등 일벌백계의 강력한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