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나이가 들면 치매에 걸릴 수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견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면 노화에 따른 변화인지, 진료가 필요한 신호인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 익숙한 곳에서 헤매고 밤낮이 바뀐다면
개 인지기능장애증후군(CCDS·Canine Cognitive Dysfunction Syndrome)은 나이가 들면서 뇌 기능이 떨어져 기억력·판단력·행동에 변화가 생기는 질환이다. 사람의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한 뇌 변화가 나타난다. 하지만 노령견의 행동 이상이 모두 치매 때문인 것은 아니다.
반려견의 치매가 의심될 때는 ‘DISHA’로 불리는 다섯 가지 행동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방향감각 상실(Disorientation), 상호작용 변화(Interaction changes), 수면·각성 주기 변화(Sleep-wake cycle changes), 실내 배변 실수(House-soiling), 활동량 변화(Activity changes)의 영문 앞 글자를 딴 말이다. 익숙한 곳에서 길을 잃거나 보호자와의 교류가 줄고, 밤에 서성거리거나 실내에 배변하는 행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불안(Anxiety)을 더해 ‘DISHAA’라고도 한다.
반려견의 행동 변화는 통증이나 시력·청력 저하, 내분비 질환 등 다른 건강 문제로도 생길 수 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 눈에 띄면 수의사와 상담해 원인을 확인하는 게 좋다.
◆ 노령견 행동 변화…7세부터 정기적으로 확인
전문가들은 반려견이 7세가 되면 해마다 보호자용 건강 설문으로 행동 변화를 확인하도록 권고한다. 이상 징후가 있으면 인지기능을 더 자세히 평가하고, 이후 6개월마다 경과를 살핀다. 10세부터는 별다른 증상이 없어도 6개월마다 인지기능을 평가한다.
보호자가 기록한 행동 변화만으로 반려견의 치매를 진단하지는 않는다. 수의사는 보호자에게 반려견의 행동 변화와 과거 병력을 확인한 뒤 신체·정형외과·신경학적 검사와 혈액·소변 검사 등을 진행해 다른 질환이 있는지 살핀다. 필요하면 뇌 MRI나 뇌척수액 검사도 한다.
◆ 앞다리 보폭 짧은 노령견…인지기능 저하와 연관
지난 6월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앞다리 보폭이 짧은 노령견일수록 인지기능 저하 정도가 큰 경향을 보였다. 보폭만으로 치매를 진단할 수는 없지만, 걸음걸이 변화도 인지기능 저하를 살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진은 평균 12.7세인 노령견 88마리를 약 6개월 간격으로 관찰했다. 개들이 5m 직선 구간을 걷는 모습을 촬영해 앞다리와 뒷다리 보폭을 쟀다. 개마다 몸집이 다른 점을 고려해 어깨 높이를 기준으로 보폭을 비교했다. 보호자는 반려견의 인지기능과 통증 정도를 평가하는 문항에 답했다.
분석 결과 인지기능 저하가 큰 개일수록 앞다리 보폭이 짧았다. 연구진의 통계 모델에서는 인지기능 저하를 나타내는 평가 점수가 10점 높아질 때마다 개의 앞다리 보폭이 약 1.2% 짧아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뒷다리 보폭은 인지기능 저하와 뚜렷한 관련이 없었다.
◆ 활동은 건강 상태에 맞게…식단·약물은 수의사와 상의
보호자는 반려견이 나이가 들어도 건강 상태에 맞춰 산책과 놀이를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마련해주는 게 좋다. 이런 활동은 노령견에게 신체적·정신적 자극이 될 수 있다.
헝가리 외트뵈시 로란드대 연구진은 7세 이상 반려견 858마리의 보호자 설문을 분석했다. 스포츠 활동을 계속하거나 보호자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함께 활동한 개일수록 인지기능 저하가 덜한 경향을 보였다.
반려견의 치매를 확실히 예방하는 식단이나 생활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중쇄중성지방이나 오메가3 지방산을 포함한 식단이 인지기능 저하 증상 관리에 도움이 되는지 연구되고 있지만, 효과가 모든 반려견에게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균형 잡힌 식사와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진단 뒤 식단이나 약물 치료를 고려할 때는 수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사람용 약이나 영양제를 임의로 먹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