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외국인 관광 역대 최대라지만 亞 문화 고루 인기 국가위상 ‘성적표’ 아냐… 국경 허문 문화시대 인정을
얼마 전 ‘백넘버’라는 일본 밴드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다. 2004년 결성된 밴드인데, 일본에선 엄청난 인기였지만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하지만 예매는 순식간에 매진됐고, 일산 킨텍스를 채운 한국 관객들은 일본어로 가사를 ‘떼창’했다. 그런데 궁금해졌다. 이런 장면을 두고 혹시 일본 언론에 “한국 청년들이 일본병을 앓는다”는 기사가 나온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최근 한국에선 외신을 타고 이런 뉴스가 수없이 올라왔다. “서울은 유학생들의 새로운 파리”,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는 종로3가”, “외국인이 ‘부산병’ 앓는다” 등이다. 값싸고 안전하고 K팝이 있는 서울에서 살고 싶어 하는 세계 젊은이가 늘어나고, 이들이 포장마차 즐비한 한국 감성의 종로3가를 사랑하며, 서울을 넘어 부산까지 가고 싶은 여행지 목록에 올렸다는 소식이다. 이런 뉴스를 보면 내가 지금 세계의 중심에 살고 있나 싶어진다. 물론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894만명. 역대 최대였다. 올해는 8월까지 벌써 1505만명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유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하다. 세계는 K팝과 K드라마에 열광하고, 서울은 밤에 여성 혼자 걷기에 안전하다는 식이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통계도 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4268만명. 한국의 두 배가 넘는다. 올해 한국의 외국인 유학생은 30만7000명인데 일본은 이미 지난해 40만명이 넘었다. 두 나라 모두 1년 새 20% 넘게 늘었다. 두 나라만이 아니다. 유네스코는 자기 나라 밖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730만명으로 지난 20여년간 3배 이상 늘었다고 집계한다. 서울로만 관광객과 유학생이 몰리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배경에는 아시아의 성장이 있다. 세계 유학생의 절반이 아시아 출신이다. 여기에 소셜미디어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국경 너머의 생활과 문화를 훨씬 가깝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K컬처만 인기인 것도 아니다. 얼굴 없이 노래하는 가수로 유명한 일본의 아도(Ado)는 지난해 세계 33개 도시를 도는 월드투어로 5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2002년생의 어린 가수다. 대만 밴드 오월천(Mayday)도 한 차례 투어에 수백만명을 불러들이고, 중국 드라마나 인도네시아 공포영화도 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다. 빌보드차트와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바깥에서 자라난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서로의 국경을 넘으면서 ‘외국’이라는 장벽을 점점 낮추는 시대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으로 세계를 보는 세대에게 이런 변화는 더 자연스럽다. 부산 해운대 해변과 방콕 짜뚜짝 주말시장, 도쿄 시모키타자와의 빈티지숍이 그들의 소셜미디어 피드에 함께 뜬다. 나라는 다르지만 같은 종류의 경험이다. 이들이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하나의 창으로 보면서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이거 멋지지?” K컬처는 그 질문을 ‘예스’라는 답으로 먼저 통과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21세기의 이런 현상을 1980년대 관제언론의 문법으로 보도하고 소비한다. ‘한국 것’이 뛰어나고, 세계가 ‘한국 것’을 인정했다는 식이다. 동시에 외국인의 발길 하나하나를 성적표로 삼는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이 백넘버의 공연장에 ‘일본의 위상’을 확인하러 간 게 아니었던 것처럼, 종로3가 포장마차에 앉은 외국인도 ‘한국의 위상’을 확인하러 온 게 아니다.
백넘버의 보컬 시미즈 이요리는 서울 공연 첫머리에서 “바다가 우리를 가르고 있지만”이라고 말을 꺼냈고, 공연 막바지에는 “감성과 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인사했다. 그날 공연장에 국적을 따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울에 더 많은 유학생이 찾아오고, 종로3가가 계속 멋진 동네로 남기를 바란다면 방법은 하나다. 그만 비교하고, 그만 자랑하면 된다. 종로3가 포차에 우리가 먼저 앉아서 술이 얼큰하게 올라 즐겁게 떠들고 웃는다면, 외국 손님은 알아서 옆자리에 앉지 않겠는가.